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폐질환' 숙환(오래 지속된 병)으로 8일 별세했다. 향년 70세.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70)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44),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5),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36) 등 1남 2녀와 손자 5명이 있다.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대표이사 CEO에 올랐지만, 지난달 27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외국인과 소액주주의 '반대'로 사내이사 연임이 좌절됐다.
특히, 대한항공은 올해 3월 1일로 창립 50주년이었다.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166대로 증가했고, 일본 3개 도시 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고,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도전과 역경, 성취와 도약의 역사가 담긴 대한항공의 여정에는 조 회장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 담은 이래로 45년간 ‘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 하나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비단 대한항공의 발전만 이끈 것은 아니다. 조 회장은 국내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명망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입사 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 경험을 두루 거쳤다.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재직기간 중 국적 항공사로서 미미한 존재감에 그치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에 몸을 담은 이래 회사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 무한 경쟁의 서막을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 주도로, 또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 위기로 움츠릴 때 앞을 내다본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조 회장은 탁월한 선견지명으로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만들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임차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 1998년 외환 위기가 정점일 당시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특히 이라크 전쟁,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뿐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 조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결국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녔다.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이 필요하다고도 확신했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2008년 7월 창립한 진에어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진에어는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 대한민국 항공시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 회장은 2015년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하는 등 ‘민간 외교관 역할’도 해왔다. 특히 2009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은 1년10개월간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하는 등 열정을 쏟았다.
그는 2014년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서 준비와 경기장 및 계페회식장 준공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다음은 대한항공의 입장 전문이다.
[전문] 조양호 회장 '수송보국' 글로벌 항공사 '우뚝'...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조양호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인천광역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 회장은 서울에서 경복고등학교를 수학한데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미국 메사추세츠 주 Cushing Academy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인하대 공과대학 학사,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 담은 이래로 반세기 동안‘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 하나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또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제고하는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명망을 높이며 사실상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그는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 같은 경험은 조 회장이 유일무이한 대한민국 항공산업 경영자이자, 세계 항공업계의 리더들이 존경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조 회장은 재직기간 중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 회장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고객, 그리고 고객들을 위한 안전과 서비스였다. 본인을 챙길 겨를 없이 모든 것들을 회사를 위해 쏟아냈다. 조 회장의 이 같은 열정과 헌신은 대한항공이 지금껏 성취했던 것들과 궤를 같이 한다.
조 회장은 평생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조 회장이 만들어 놓은 대한항공의 유산들은 영원히 살아 숨쉬며 대한항공과 함께 할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약력
△ 1949년 인천 출생
△ 1964년 경복고등학교 입학, 1968년 미국 Cushing Academy 고등학교 졸업, 1975년 인하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 학사, 1979년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8년 인하대 경영학 박사, 1998년 Embry Riddle 항공대학 항공경영학 명예박사, 2006년 우크라이나 국립항공대학 항공경영학 명예박사
△ 1974년 대한항공 입사
△ 1984년 정석기업 사장
△ 1989년 한진정보통신 사장
△ 1992년 대한항공 사장
△ 1995년 아일랜드 명예총영사
△ 1995년 한국항공대학(정석학원) 이사장
△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
△ 199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 1996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 1996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
△ 1997년 美 남가주대 재단이사
△ 1999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 1999년 대한항공 회장
△ 2000년 한/불 최고경영자 클럽 회장
△ 2003년 한진그룹 회장
△ 2004년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
△ 2008년 한·사우디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 2008년 대한탁구협회 회장
△ 2009년 대한체육회 이사
△ 2009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 2009년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 2010년 PEACE AND SPORT 대사
△ 2010년 대한체육회 부회장
△ 2014년 한불상호교류의해 조직위원장
△ 2014년 한진해운 대표이사 회장
△ 2014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전략정책위원회 위원
△ 2014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