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70)이 별세하면서 재계 순위 14위 한진그룹의 경영권 승계구도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진그룹 안팎에서는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44) 대한항공 사장으로 경영권이 승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3세 경영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하지만 조원태 사장을 비롯한 유족들이 상속세를 납부할 자금이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지분 승계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첫 관문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총수(동일인)’ 지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 비상경영체제 돌입...조원태 사장, 3세 경영체제 유력 '경영권 분쟁 등 변수'
공정위가 5월 1일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2019년 대기업 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동일인인 조양호 회장이 별세한 상황이기 때문에 공정위는 한진그룹의 동일인을 새로 지정해야 한다"며 "동일인은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대기업 ‘총수’라는 점에서 공정위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同一人)은 대기업 집단을 규정하고 시장지배력 남용,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하는 ‘기준점’이다.
동일인을 기준으로 친족ㆍ비영리법인ㆍ계열사ㆍ임원 등 동일인 관련자의 범위를 결정한다. 기업집단 소속회사 범위도 동일인 범위를 기준으로 확정한다.
공정위에 의하면 동일인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기업집단에 공시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할 의무가 있으며 허위 자료를 제출할 경우 고발당한다.
'동일인'과 ‘대표이사’는 다르다.
대표이사는 ‘회사를 경영하는 최고경영자(CEO)’에 국한하지만, 동일인은 ‘회사(집단)를 지배하는 최고 권위(총수)’다.
동일인은 ‘월급쟁이 사장’과 ‘실질적 오너’를 가르는 법적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공정위, 5월 1일 대기업 집단 동일인(총수) 지정 예정...한진 이외 LG, 두산 등도 변경
동일인은 공정위 기업집단국에서 정량ㆍ정성 조건을 반영해 지정한다. 정량 조건은 주식 ‘지분율’이고 정성 조건은 ‘지배적 영향력’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분율은 이건희 회장이 높지만, 동일인은 이재용 부회장이다. 고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사장의 경우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2.34%를 갖고 있다. 조현아ㆍ조현민 씨는 각각 2.31%, 2.30%를 들고 있다.
3남매간 지분율에 큰 차이가 없다. 경영권 승계에서 변수다.
따라서 지배적 영향력이 동일인 지정의 중요한 요건이다. 현재 사내이사로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조원태 사장이 동일인 후보로 유력하다.
공정위는 올해 5월 LG그룹과 두산그룹의 동일인도 바꿔야 한다. LG(구본무), 두산(박용곤)의 동일인이 지난 1년 사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구광모 LG 회장과 박정원 두산 회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결국 조원태 사장이 동일인 지위를 이어받으면 공식 총수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다만 2000억원대에 이르는 상속세 등 문제로 지분 승계 과정에 '험로'가 예상된다.
유족들이 내야 할 상속세는 상장주식 기준 1700억원대 이외에도 부동산 등도 포함되므로 상속세 규모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또 상장주식에 대한 상속세는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전후 2개월씩 4개월간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날 주요 계열사 주가가 급등세를 보여 상속재산 규모는 커질 수 있다.
상속권자 1순위인 조양호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결정에 따라 상속 지분에 변동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한진그룹은 지주사인 한진칼이 최대주주인 대한항공과 한국공항, 진에어, 한진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이 17.84%(우선주 지분 2.40% 제외)를 비롯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8.95%에 이른다.
2000억대 상속세 자금 마련 변수, 한진칼과 한진 배당 증액 가능성 높아
조양호 회장의 일가가 상속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주식담보대출과 배당이다. 상속자금이 부족함에 따라 일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한진칼과 한진의 배당 증액 가능성이 크다.
주식담보대출의 경우 조양호 회장 일가가 가진 한진칼과 한진의 지분 가치가 1천217억원인데, 지분 평가가치의 50% 수준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609억원을 조달할 수 있다.
따라서 상속세의 나머지는 1천400억원 수준은 배당을 통해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조 회장의 일가가 받은 배당금은 약 12억원 수준에 불과해 배당을 크게 늘려야 한다.
상속세는 납부세액이 2천만원이 넘으면 일반적으로 5년까지 나눠 내는 연부연납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 회장 일가는 주식담보대출과 배당 증액 등을 통해 분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여론으로부터의 공격에 지쳐 상속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주요 주주들과의 빅딜을 통해 일가들은 임원 자리를 유지하면서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줄 가능성도 있다는 것.
한진그룹의 최대주주 지위가 위협받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증권사 관계자는 "상속세율을 50%로 단순 적용할 경우 한진칼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0.03%, KCGI와 국민연금공단의 합산 지분율은 20.81%"라며 "현재의 단순 지분 기준으로도 최대주주 위치를 위협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의 별세로 한진그룹은 사장단 회의에서 주요 사항을 의결하는 비상경영 체제 상황이다.
하지만 한진그룹이 빠른 경영권 승계를 통해 경영체제 안착이 급선무라는 점에서 시간이 많지 않다. 공정위가 5월 대기업 집단 지정에서 조원태 사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면 경영권 승계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는 3~4세 경영체제로 급변하고 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