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계 총수 중 최초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을 갖자, 중국에서 위기에 처한 롯데그룹이 글로벌 투자의 거점을 미국으로 옮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신동빈 롯데 회장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투자 확대 및 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면담은 지난 9일 롯데케미칼이 준공한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 에탄크래커 공장 투자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고마움의 표시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지난 9일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에 위치한 에탄크래커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이 공장에 투입된 사업비는 총 31억 달러(약 3조6000억원)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대미 투자이며, 역대 한국 기업으로는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도 롯데의 투자를 적극 환영하며, 실비아 메이 데이비스 백악관 전략기획 부보좌관을 준공식 현장으로 보내 축전을 전달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롯데는 현지 상황을 고려해 에틸렌 40만톤을 추가로 생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으며, 화학 분야 외 호텔 사업 분야에서도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롯데는 1991년 롯데상사가 처음 미국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알라바마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생산기지, 롯데뉴욕팰리스호텔, 괌 공항 롯데면세점 등이 진출해 있다. 미국 현지에 롯데케미칼, 롯데면세점, 롯데호텔, 롯데글로벌로지스, 롯데상사 등 5개사가 진출해 있으며, 롯데그룹이 미국 투자를 통해 창출한 직접 고용인원만 해도 총 2000여 명에 달하고, 총 투자규모가 4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매년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에 부응하면서 롯데그룹의 글로벌 거점이 현재 정치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을 벗어나 미국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재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특히 롯데의 미국 투자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관협력이 돋보인다. 케미칼 사업은 미국 현지 파트너인 웨스트레이크(구 액시올)와의 합작을 통해 기술 및 노하우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호텔과 면세사업은 각 지역 관광청과 협력 또는 지원을 통해 지역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 및 주정부도 해외자본에 대한 두려움 없이 롯데의 대미 투자를 환영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번에 준공한 케미칼 분야 외에도 롯데의 미국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먼저 호텔분야에서는 지난 2015년 8월 130년 전통의 미국 뉴욕팰리스호텔을 인수해 화제가 됐다. 국내 호텔업계 최초의 북미 시장 진출이다. 인수 후 롯데뉴욕팰리스호텔로 브랜드를 바꾸고 레스토랑, 연회장, 스파 등 시설 증축 및 추가 오픈을 통해 호텔의 서비스 접점을 늘렸다.
한국식 서비스를 접목시킨 롯데뉴욕팰리스호텔은 롯데의 인수 후 높은 객실 가동률을 유지함은 물론이고, 매년 유엔총회가 열릴 때 마다 ‘제2의 백악관’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 내 정관계의 주목을 받는 장소가 됐다. 지난해에는 ‘세기의 외교 이벤트’로 불렸던 한미정상회담과 미일정상회담 역시 성공적으로 유치하며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13일 트럼프 대통령도 이 호텔에 대해 좋은 투자였다며, “전통이 있는 훌륭한 건물이니 잘 보존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면세점 분야에서도 미국 진출에 성공한 바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2013년 7월 괌 공항면세점 입찰에 성공하며 10년 운영 파트너로 선정됐다. 국내 면세점 업계 최초로 해외 공항 면세점의 단독 운영권을 확보한 사례다.
롯데 괌 공항점은 향수와 화장품, 양주, 선글라스, 시계 매장을 포함 총 300개 이상의 국내외 브랜드를 갖추고 있어 관광객들의 쇼핑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으며, 공항 편의시설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괌 공항점은 오픈 이래 연 평균 30%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괌 법인(Lotte Duty Free Guam, LLC)을 별도로 설립해 지역 밀착형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공항면세점 운영을 통한 150여 명의 지역 일자리 창출은 물론 새로운 문화 콘텐츠 개발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 등 유통분야의 미국진출은 아직 구체적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마트 등이 장악하고 있는 미국 유통 시장은 국내 기업이 진출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롯데그룹이 사드 보복을 멈추지 않고 있는 중국보다 미국을 더 매력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독려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 롯데측의 가시적인 추가 투자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미국과 다양한 사업분야 교류를 통해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 상당한 시너지를 확보하고 있다”며 “한·미 경제협력, 고용창출 등에 기여하고 있는 사업들에 대해 향후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양현석 기자 market@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