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상황서 '밀당 전략' 펼쳐야 한다는 주장 나와... '신북방·신남방 정책' 제안도
미국이 '화웨이 글로벌 왕따 전략'을 취하자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하겠다' 입장을 공공연하게 비추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될 거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와 기업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밀당'을 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이 같은 태도는 일본 최대 완성차업체인 토요타도 취하고 있는 전략.
29일 한 재계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에 요구하는 ▲무역장벽을 낮춰라 ▲타국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불법으로 이용하지 마라 ▲위안화 가치를 올려라 등은 우리에게도 분명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중국도 미국만큼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쪽 편에 서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 양쪽에 적어도 '한국이 동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 설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곱씹어볼 만한 제안이다.
또, 미국이 최근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에 대한 공세를 전통 우방국의 기업들에게도 확대 요청하면서, 국내 대기업들의 고심이 깊다는 게 드러나는 발언이다.
현재 우리 업계는 화웨이에 부품을 예정대로 공급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화웨이 왕따 전략에 동참할 것인지를 놓고 소란스러운 상황. 관련 기업들은 모두 "공식 입장이 없다"며 답변을 꺼리고 있다.
이 같은 처지에서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난감하긴 매한가지다.
재계 관계자는 "빅2가 다투는데 우리 정부 또한 별다른 수가 없는 건 마찬가지"라며 "우리 정부뿐 아니라 일본과 독일 정부도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 양쪽에 '적은 아니다'는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미국의 중국에 대한 요구 타당하지만, 2000년 '마늘 파동'과 2016년 '싸드 보복'에 대한 뼈아픈 기억 또렷해
특히, 2000년 '마늘 파동'과 2016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싸드 보복'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우리 정부 입장에선 미국의 요구를 곧이곧대로 들어주기란 쉽지 않다.
2016년 '싸드 보복' 이후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급기야 현대·기아차는 베이징 1공장 폐쇄와 옌청 1공장 구조조정을 발표하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웃 국가가 오히려 더 무서운 법"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리와 달리 대만 통신사들은 화웨이 스마트폰을 아예 팔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미국의 요구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만이 중국을 통한 우회 수출 비중이 우리와 함께 가장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 도전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발표한 '한국과 주요국의 대중 수출 공급경로 비교분석' 보고서를 보면, 대만의 중국 우회수출 비중은 31.8%, 한국은 24.9%다.
우회수출은 중국 기업에 중간재를 보내면, 그 중간재로 중국 기업이 최종재를 만들어 미국 등 다른 국가에 수출하는 걸 말한다.
미국이 중국산 물건을 취급하지 않으면, 중국 기업이 최종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중간재를 구매하지 않게 돼, 중국에 중간재를 주로 공급하는 한국과 대만엔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국제무역연구원은 위 보고서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전략으로 ▲신남방·신북방 경제권으로 수출시장 다변화 모색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최종재 수출 확대 노력 ▲중국 내수시장 겨냥한 중간재의 고기술 및 고부바가치화에 집중 등을 꼽았다.
국제무역연구원은 "중국 진출 전략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은 제안을 내놨다.
양도웅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