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기업 어려움 인정해 한시적 완화… 국민 안전 위해 법은 지켜야”
한일 경제전쟁이 본격화하면서 화평법(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부 업계와 경제단체에서 화평·화관법으로 인해 ‘소재 국산화’ 촉진이 힘들다는 우려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절차가 복잡한데다 비용이 커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업계에서 일본 수출 규제를 빌미로 화평·화관법 완화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국민 안전을 중심에 두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마련한 법안을 위기 상황을 틈타 지워버리려 한다는 지적이다.
화평·화관법은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마련됐다. 2015년 1월 1일 처음 시행됐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나 2012년 노동자 5명이 사망한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등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 성분에 포함된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메칠이소티아졸리논(MIT)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 이전에 출시됐다는 이유로 유해성 심사를 20년 동안 면제받은 게 밝혀져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민주당)은 일본과 무역 전쟁 국면에서 소재 국산화를 위한 한시적 규제 완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민 안전을 위한 화평·화관법은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여당 내에서 화평·화관법 지키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의원이다. 한 의원은 8일 오전 국회에서 처음 열린 더불어민주당 소재·부품·장비·인력 발전 특별위원회에도 참가했다.
한정애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나 여당 쪽에서는 국민 안전과 관련한 건 뒤로 무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일본과 무역 분쟁이라는 분위기를 틈타 기존 제도의 가이드라인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환경부도 전면에 나서 화평·화관법 관련 오해 풀기에 나섰다. 재계의 주된 지적 사항인 중소기업 고충이나 일본 무역 규제로 인한 완화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2014년 4월부터 화학안전 산업계 지원단을 운영해 중소기업에 유해성 자료 제공, 컨설팅 작업 등을 하고 있다. 일본 무역 규제 전부터 중소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내년에는 관련 예산도 늘릴 계획을 세웠다.
서민아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 서기관은 “대부분 업체가 화평·화관법 이행을 잘 하고 있다. 신규 물질도 매년 1000종 정도 등록했고 기존 물질도 343종이나 등록을 마쳤다”며 “그 중에는 불화수소를 다루는 업체도 38곳이나 있다”고 설명했다.
화관법이 영업비밀을 공개하도록 해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환경부는 잘못된 정보라고 반박했다.
서 서기관은 “내년부터 도입하려는 영업비밀 승인제도는 업체가 등록된 화학물질을 양도할 때 유해성이 있는 물질의 정보는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데, 업체가 유해성 물질 정보를 영업비밀로 비공개하려면 정부에 사전승인을 받으라는 것”이라며 “모든 물질에 대해 승인받으라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화평·화관법 관련해 불평을 쏟아낼 법한 업계에서도 법 취지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화평·화관법이 세계적 추세라는 점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다.
일본 수출규제로 인한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됐던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부품과 구매처 다변화가 이미 많이 돼 있어 배터리와 화학 분야에서 회사가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화평·화관법에 대한 불만 목소리도 없는 것은 아닌데 세계적 추세라는 점에 공감하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매출 규모가 큰 한 화학 업계 관계자 역시 “우리 같은 경우 전담부서가 있고 안전 시스템이 이미 잘 갖춰져 있어 관리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다”며 “다만 그런 시스템이 없는 회사의 경우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재 국산화가 화평·화관법으로 인해 늦어졌다는 주장에는 인과관계가 틀렸다는데 대부분 동의했다. 화평·화관법을 반대하는 쪽에서도 “소재 산업이 뒤떨어진 게 이 법 때문이었다는 건 과장이고, 지금 당장 소재 산업 투자가 어렵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창완 기자 science@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