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매장 종말?
소매 유통업계가 고전하고 있다. 국내 최대 대형마트 업체인 이마트는 올 1/4분기 매출 보고에서 영업이익이 20% 이상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8월 9일, 이마트는 2/4분기 실적 보고에서 창사 이래 최초의 적자를 기록했고 여타 경쟁 대형마트들도 모조리 마이너스실적을 보고했다.
오프라인 점포들이 고전하는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최근 8월 1일, AP뉴스통신은 유명 패션 플래스십 스토어와 고급 백화점들이 운집해있는 뉴욕 맨해튼 매디슨가와 시카고 매그니피센트마일 쇼핑거리의 매장 폐점 추세를 보도했다.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에서는 지난 10년 사이 쇼핑몰 25%가 사라졌다. 인터넷 쇼핑이 대세가 된 후로 요즘 소비자들은 독특한 구매경험이나 특별행사가 있지 않는 한 쇼핑몰이나 대형마트로 나가길 꺼린다.
미국 유통업계에서는 ‘소매유통업의 종말론’이 거론되는 가운데 프라이빗 레이블링(private labeling, PL)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수퍼마켓, 드럭스토어, 편의점 체인 업체들은 특히 가성비를 내세운 저가 자체 브랜드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 예컨대 월마트의 그레이트밸류(Great Value) 알뜰 포장 식음료품과 공산품 라인과 타겟의 Up & Up과 스마틀리(Smartly) 스킨케어 위생용품 라인이 대표적이다. 獨 알디(Aldi)는 아예 달러스토어 PL 제품 보다도 더 싼 가격의 수퍼마켓 PL 제품으로 맞서고 있다.
할인편의점의 급부상으로 타격 받는 수퍼마켓 업계
미국에서 대형 소매유통업체들이 앞다퉈 PB 상품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는 또 있다. 최근 특히 미국 상가와 집 사이 거리가 먼 교외와 시골 저소득층 거주구역에서 ‘달러스토어’ 할인편의점들이 급속히 늘어나며 기존 수퍼마켓 체인들의 시장점유율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수퍼마켓과 대형마트 매출은 지난 3년 사이 년간 약 10억 달러 씩 감소하고 있는 반면, 달러 스토어의 폭발적인 매출 성장과 매장수 팽창을 거듭하는 가운데 달러제너럴(Dollar General)이 아마존 인수될 것이란 설까지 나돈다.
달러스토어의 급성장 비결은 저가 자사 브랜드 마케팅 전략에 있다. 美 프라이빗 레이블 제조업체 협회(PLMA)와 英 닐슨이 실시한 공동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8년 한해 동안 유통업계내 자사 브랜드 상품(PL) 매출 성장율은 33% 이상 증가한 반면 전문제조업체 브랜드(NB)는 1% 미만에 그쳤다.
기성 수퍼마켓 체인 vs 할인편의점: 누가 더 싸고 좋은가 경쟁
예를 들어, 라면을 사러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을 가보자. 진열대에는 우리나라 현재 대표 라면 브랜드인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등 이른바 전문제조업체(National Brand 또는 NB) 제품들이 있다. 소매 유통업체인 수퍼마켓은 이들 NB 상품을 도매가에 구입한 후 마진을 더한 소비자 가격에 판매해 이윤을 창출해왔다.
허나 이제 대형 유통업체들은 자기 매장에서 타사 NB제품을 유통해주는 그같은 임대업 모형에서 탈피할 때가 됐다. 꾸준한 지대 임대료와 고용비 상승 등 제비용은 점점 영업 실적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게다가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경쟁 해오는 달러스토어의 정면 도전을 받으며 자체 브랜드 제품으로 맞서야 한다는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자체 브랜드는 준수한 ‘품질’과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직접 소싱하고 기획・판매하는 브랜딩 전략이다. 대형 마트들은 자체 브랜드 제품을 전문제조업체 제품과 나란히 진열대에 제공해 경쟁함으로써 아예 고객들이 달러스토어로 발 돌릴 틈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속셈이다.
자사 브랜드 상품은 수퍼마켓 유통업자가 직접 생산자나 제조업자에게 주문하고 중간자 비용 부담, 유통 관리, 가격 책정과 판매방식 등 전 유통과정에 대한 권한과 통제권을 줄 뿐만 아니라 소비자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출수도 있다. 자체 브랜드가 저가에 책정되더라도 마트 측은 이윤을 낼 수 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신세대 소비자: 비슷한 품질이라면 싸고 새로운 상품을
유럽에서는 슈퍼마켓 및 드럭스토어에 프라이빗 레이블 상품은 전혀 낯설지 않다. 수퍼마켓 체인들이 직접 개발해 유통하고 있는 자체 브랜드(Own Brand) 또는 자사 상표 브랜드 상품(Private Brand, 줄여서 PB)은 전체 유통 상품 물량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PL 마케팅이 제일 활성화돼 있는 영국에서 수퍼마켓 자제 브랜드 시장점유율은 50%을 상회하고 있으며, 독일과 네덜란드는 45%, 동유럽권에서도 30%대에 이른다(자료: Nielsen, 2019년).
NB(National Brand) 상품에 비해 질이 후지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지난 몇 년 사이 PB 상품의 품질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특히 젊은층 소비자들일수록 저가 PB 상품의 품질과 식음료품 맛에 만족해 하거나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자체 브랜드 제품은 그 마트 체인에서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충성스러운 새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이자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가성비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신호하는 디자인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PL/PB 상품의 가장 큰 매력은 가성비다. 제품의 품질이나 성능은 경쟁 NB 업체 상품과 큰 차이가 없지만 부담없는 가격과 산박하고 참신한 제품 디자인과 포장은 가성비와 기능성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소비자들에게 긍정적 시그널을 소통한다. 특히 심플한 형태와 단색 위주의 미니멀룩의 제품은 지나친 물적 풍요와 잡동사니의 홍수 속에서 생활을 능률화・합리화시켜 줄 것이란 시각적 테라피 기능도 한다.
그같은 추세를 반영해 이미 이마트의 ‘노브랜드’, 롯데마트의 ‘온리프라이스’, 홈플러스의 ‘심플러스’, CU편의점의 ‘헤이루’는 실속 위주의 자체 상품 브랜드들로 기성 NB 상품들과 나란히 진열된채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며 경쟁한다. 또 롯데마트는 2018년 기준 전체 상품 매출 대비 13%를 차지하던 매장내 PB 상품 구성 비율 보다 최대 50%까지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발표했다(2019년 3월).
지금은 온라인 쇼핑과 가성비 위주의 구매가 대세다. 그런만큼 기성 대형 마트기업, 할인편의점, 신흥 스타트업은 이커머스를 활용한 유통 채널과 라이프스타일 마케팅 실험에 더 주력할 것이다. 당장 가성비와 미니멀 라이프스타일 현재 추세는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까? 거시적으로 보건대 소비자 취향과 소비 패턴은 앞으로 더 원자화・세분화될 것이며 리테일 업계는 그에 맞춘 역동적인 브랜딩 전략을 발휘해야만 살아 남을 것이다.
박진아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