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우왕좌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한 사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고 말았다. 적절한 시기에 비상사태 선포도, 현 사태에 대해 정확한 분석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WHO는 30일 저녁 긴급위원회를 재소집했는데 이 또한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23일 WHO는 긴급위원회를 소집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비상사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50대50으로 의견이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WHO는 이를 근거로 비상사태를 유보했다. 그 사이 우한 지역은 급속도로 바이러스가 퍼졌다. 비상사태가 선포되지 않으면서 출국과 이동 등이 잦아지면서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 관련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배경이 되고 말았다.
의견이 50대50으로 맞선 상황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인다. 이는 신종 감염병의 경우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견이 팽팽히 맞서더라도 ‘최악의 상황’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WHO가 상황을 안이하게 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배경이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WHO 긴급위원회에서 비상사태를 두고 50대50으로 의견이 맞섰다면 그 당시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게 맞다”며 “물론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는데 신종 감염병에 대해서는 우선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WHO의 실기는 이뿐만 아니다. 26일 이전까지 WHO 홈페이지에는 정확한 감염자, 사망자 등이 집계되지 않았다. 세계 보건을 책임지는 국제기구가 관련 데이터를 실시간 공개하지 않으면서 전 세계의 비판이 이어졌다. 여기에 26일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보통’이라는 위험 단계를 발표했었다. 미국 몇몇 언론들은 이를 두고 WHO가 잘못 표기했다는 지적까지 내놓았다.
부랴부랴 WHO 사무총장이 26일 베이징을 방문했고 이후에서야 WHO 홈페이지는 중국 우한 지역에 대해 위험 단계를 ‘Very High(매우 높음)’로, 전 세계에 대해서는 ‘High(높음)'로 변경했다. 이 또한 뒤늦은 대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WH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과학적이지 않은 언급까지 내놓아 비판에 직면했다. WHO 대변인이 “무증상자도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일파만파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 측은 “아직 WHO 어디에도 무증상자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닌데 WHO가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비상사태 선포와 관련해 WHO가 중국의 눈치를 본 것 같다”며 “중국이 WHO에 이바지하는 몫이 적지 않다”고 그 배경을 조심스레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별 의무사항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만약 한 개인에게 의심되는 징후가 나타나면 병원을 먼저 갈 게 아니라 나라별 콜센터(우리나라는 질병관리본부 1339)에 연락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를 지키지 않고 병원부터 찾는다면 해당 병원은 격리될 수밖에 없다.
정기석 교수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치사율이 아직 높지 않은 편”이라며 “지나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되며 개인별 의무와 숙지 사항, 국가별 비상대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한편 WHO가 내놓은 29일(현지 시각) ‘상황보고서-9’를 보면 지금까지 6065명이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중국에서 5997명, 다른 나라에서 68명 등이다. 132명이 숨졌다. 중국에서 의심환자는 9239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위험 단계로는 중국은 ‘매우 높음’이고 전 세계적으로 ‘높음’ 단계를 유지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30일 오후 9시 30분에 열리는 WHO 긴급위원회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대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30일 WHO는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Novel coronavirus Outbreak(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이란 기사를 게재했다.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