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 모습이다. 무표정이다. 담담하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브리핑할 때도. 담당자에게 자료를 요청할 때도. 기자들 질문을 받을 때도. 변함이 없다. 코로나19(COVID-19)가 1월부터 전 세계로 퍼질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곳에 서 있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방역대책본부장이다. 6일, 한 달 보름 만에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50명 이하(47명)로 줄었다. 주목할 일이다. 확산세가 한풀 꺾였다고 봐도 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라면 관련 브리핑을 어떻게 했을까. 브리핑하러 오는 순간부터 들떠 있을 것이다. 마침내 50명 이하로 신규 확진자를 막는 데 성공했다며 야단법석일 것이다. 기자들 질문에는 ‘47명만 추가돼 코로나19 방어에 우리 정부가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 알아달라’고 호소했을 것이다. 확산세가 확실히 꺾였다고 온갖 수사는 다 갖다 붙였을 것이다.
통계는 객관적이다. 문제는 이 통계를 특정 목적을 갖고 이용하면 왜곡된다. ‘정은경의 그래프’는 정치적 목적과 거리가 멀다. 특정 목적을 위해서도 사용되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감염시켰다. 우리나라는 요동쳤다. 신천지교인인 31번째 확진자 이후 대폭발했다. 감염병 재생산지수(R0)가 치솟았다. 이후 수백 명씩 감염자가 속출했다. 대구는 속수무책이었다. 6일 한 달 보름 만에 처음으로 신규 감염자가 50명 이하로 줄었다. 6시 0시 기준으로 전날보다 47명 추가됐다. 그동안 코로나19 최일선에서 국내 방역을 총괄했던 정은경 본부장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6일 정례브리핑에 섰다. 그는 “코로나19 발생 현황에 대해 말씀드리겠다”며 담담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정은경의 그래프’에는 희극과 비극이 뒤섞여 있다. 6일 현재 나타난 우리나라 코로나19 통계를 보더라도 그렇다. 6일 현재 국내 총 누적 확진자는 1만284명이다. 완치(격리해제)된 사람은 6598명이다. 치료 중(격리 중)인 환자는 3500명이다. 사망한 사람은 186명이다. 6일 현재 우리나라 코로나19 환자는 3500명이다.
4월 1일부터 6일까지 그래프를 보면 ‘희극적 흐름’을 느낄 수 있다. 4월1일부터 완치자와 신규 확진자 규모를 보면 알 수 있다. 완치자(신규 확진)는 4월 1일 159명(101), 2일 261명(89), 3일 192명(86), 4일 304명(94), 5일 138명(81), 6일 135명(47)으로 집계됐다. 완치자가 며칠 사이 159명에서 304명에 이르기까지 매일 증가했다. 코로나19 공포에서 벗어났다.
반면 신규 확진자는 1일 101명에서 6일 47명에 이르기까지 낮아졌다. 회복된 사람은 늘어나고 감염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물론 이 수치는 내일이면 또 어떤 곡선을 그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우리나라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희극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극적 상황도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치명률이 매우 낮았다. 3월 중순까지 코로나19 국내 치명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0.9% 수준이었다. 6일 현재 치명률은 상승했다. 1만284명 누적 확진자에 사망이 186명으로 치명률은 1.80%, 3월 중순보다 2배 정도 증가했다.
코로나19 대응의 기본은 감염자를 빠르게 파악하고, 감염된 사람을 빠르게 회복시키고, 중증과 위중 환자를 빠르게 치료해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는 데 있다. 치명률이 높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 본부장은 6일 정례브리핑을 끝내면서 “6일 확진 신규환자가 50명 이하로 떨어졌다”며 “이는 일선 현장에서 환자 진료와 진단에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 역할이 컸다”며 의료진과 국민 몫으로 성과를 돌렸다. 다만 “해외유입 위험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지역사회에서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며 “집단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여전해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본부장은 감염 재생산지수(R0, 한 사람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 파악하는 지수)를 언급하면서 “대구 신천지교회 사태가 있었을 때는 R0가 매우 높았다”며 “지금은 상황에 따라 다른데 방역 당국의 목표는 R0를 ‘1’ 이하로 떨어트리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래프는 지금도 그려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프는 희극으로 나아가고 있다. 비극과 희극의 그래프를 보며 정 본부장은 잠 못 드는 밤과 고민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국민은 그것을 알고 있다. 가식으로 미장한 정치인보다 정직으로 맨얼굴을 한 정 본부장을 국민이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 정은경의 그래프’는 ‘국민의 그래프’이기도 하다.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science@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