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소송 이후 다시 불거진 망 이용료 분쟁...협상 기준 될 가능성 높아
- "비상식적 구조...새로운 룰 만들어야"
SK브로드밴드가 홀로 총대를 멨다. 넷플릭스와의 소송 얘기다. 업계에선 “국내 인터넷 사업이 외국 기업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곳은 SK브로드밴드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넷플릭스 한국법인 넷플릭스서비스코리아는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이 넷플릭스가 인터넷망 운영·증설·이용에 대한 대가(망 이용료)를 SK브로드밴드에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판단해 달라는 취지다.
이번 분쟁은 지난해 8월 방송통신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페이스북이 제기한 행정소송 이후 다시 한번 불거진 ‘망 이용료’ 갈등이다. 당시 법원은 1심 소송에서 법원이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인터넷 서비스 유지의 책임이 콘텐츠제공업자(CP)가 아닌 인터넷통신사업자(ISP)에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글로벌 기업들은 내지 않는 망 이용료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소송은 그 결과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이 정상화될 수 있을 분기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녹색경제신문은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의 쟁점을 두 편에 걸쳐 다루고자 한다. - 편집자 주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소송은 국내 ISP와 글로벌CP 사이의 ‘사업적 룰 형성’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이번 소송의 결과로 글로벌 CP들의 국내 망 이용료 부담 여부가 정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넷플릭스의 사례가 추후 유튜브ㆍ아마존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국내에서 펼치는 인터넷 사업의 기준처럼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
SK브로드밴드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국내 인터넷 사업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이 소송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아군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문제의 관련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다소 소극적인 입장이고, KT와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소송이 사업자와 사업자의 분쟁이기도 하지만, 국내 인터넷 사업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다”며 “트래픽이 증가하면 CP사는 수익이 늘어나지만, 인터넷 사업자들은 부담만 증가한다. 누군가는 협상에 나서서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트래픽 증가, 넷플릭스는 수익으로 SK브로드밴드는 비용으로...역차별 논란도 ‘심각’
넷플릭스는 대표적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글로벌 사업자다. 인터넷으로 영상 콘텐츠를 공급하며 수익을 낸다. 국내 망은 한국을 ‘인터넷 강국’이란 별칭을 만들어 줬을 만큼 품질이 높다. 넷플릭스는 이 덕분에 망에 서비스만 얹어 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고품질 망은 국내 ISP들이 수년에 걸쳐 구축한 성과다.
문제는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되는 영상이 고화질로 변화하고,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기 시작하며 발생했다. 국내 이용자도 급격히 증가하면서 트래픽이 과도하게 몰렸다. 이 트래픽량은 현재 통상적인 네트워크 환경으론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에 몰리는 트래픽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3차례, 올해 들어서만 4차례 해외 망을 증설하기도 했다. 넷플릭스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이 네트워크 품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기에 결정한 사안이다. 늘어난 트래픽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은 온전히 SK브로드밴드의 몫이 됐다.
넷플릭스가 과도한 트래픽 발생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국내 인터넷 기반 사업자들과 역차별 논란도 발생하고 있다.
트래픽 병목현상은 OTT 사업자뿐 아니라, 포털이나 대형 언론사 등에서도 이슈가 되는 사안이다. 일반적인 네트워크 환경에서 처리될 수 없는 트래픽이 발생하는 대부분의 국내 사업자들은 망 이용료를 내고 있다.
이들 기업은 전용망을 대여하거나 회선을 증속하는 데 발생하는 일정 금액을 지불한다. 국내 대표적 포털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는 연 700억원, 카카오는 연 300억원 정도의 망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같은 ISP는 이 금액을 받아 회선을 증선, 인터넷 기업에서 발생되는 병목현상을 해결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망 이용료를 내지 않는 넷플릭스와 비교하면 역차별을 받는 셈이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의 서비스로 유발된 트래픽을 처리하며 발생하는 비용을 다른 국내 기업들처럼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넷플릭스는 세계 곳곳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선 지금껏 망 이용료를 회피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다. 업계에선 넷플릭스가 미국과 프랑스의 ISP들에 망 이용료를 내고 있다고 본다. 넷플릭스와 ISP 간의 비밀계약으로 납부 여부와 금액 등이 정확하게 공개되고 있지 않지만, 외신들은 다수의 ISP 관계자 증언을 인용해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를 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망 이용료를 내지 않으면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때만 ISP의 제안에 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주로 망 이용료를 낼 의무가 없고, 대신 캐시서버(OCA)를 무상 설치하는 방식으로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넷플릭스가 회피 카드로 내놓은 기술은 콘텐츠를 국내 캐시서버에 미리 저장해 놓고 빠르게 고용량 영상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통신업계에선 “캐시서버는 비용을 줄이는데 큰 실효가 없다”고 설명한다. 해외의 서버에서 국내 서버에 다운로드를 통해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서버뿐 아니라, 해외 회선까지 이용하며 이중으로 비용이 발생하고, 결국 국내 망을 이용하기에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망 이용료는 사업자 간 협상을 통해 맺은 계약을 기반으로 지급된다. 넷플릭스의 경우엔 콘텐츠를 무기로 ISP에 망 이용료에 관한 제안을 할 수 없게끔 한다”며 “가입자가 콘텐츠 이용에 불편함이 발생하면 그 책임을 ISP에 떠넘기는 식으로 대응하고, 정작 문제 해결에 의지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넷플릭스와 국내 사업자의 관계는 대부분 인터넷 기업의 비용만 증가하는 식으로 맺어져 있는 게 사실”이라며 “불합리한 구조가 계속된다면 부담이 지속되고, 이는 결국 다른 이용자의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두용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