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보급 ‘민간→공공’ 정책 방향에… 업계 "산업 생태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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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 보급 ‘민간→공공’ 정책 방향에… 업계 "산업 생태계 무너진다"
  • 서창완 기자
  • 승인 2020.08.2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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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재생에너지 연계 ESS 가중치 ‘0’… 공공 중심 보급 계획
29차례 화재 부담 됐나… 정부, 충·방전 방식 효율적이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이유
ESS 업계 “관련 산업 생태계 고려 안 했다… 한 순간에 경쟁력 잃게 돼”
충남 태안 안면소에 설치된 삼양태양광발전소로 태양광 17MW, 에너지 저장 장치(ESS) 49MWh 용량을 갖췄다. [사진=한국서부발전]
충남 태안 안면소에 설치된 삼양태양광발전소로 태양광 17MW, 에너지 저장 장치(ESS) 49MWh 용량을 갖췄다. [사진=한국서부발전]

정부가 내년부터 재생에너지 연계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을 민간에서 공공 중심으로 이전한다. 민간 부문 설비량 확대 중심의 보급 정책이 전력 계통 안전성에 기여하지 못했고, 전력 이용이 비효율적이라는 판단 아래서다. ESS 업계에서는 최근 2~3년간 급속히 성장한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2017년부터 29차례나 발생한 화재 문제로 시달려 온 정부가 골치 아픈 문제를 덮고 가려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1일 내놓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관리운영지침 개정’을 통해 ESS의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축소했다. 태양광 연계 ESS는 REC 가중치가 5.0에서 4.0, 풍력 연계는 4.5에서 4.0으로 줄였다. 태양광·풍력 연계 ESS의 REC 가중치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일몰돼 내년부터는 0이 된다. 사실상 민간에서 새롭게 ESS를 설치하지 말라는 정책 신호다.

오승철 산업부 신재생에너지정책과장은 “ESS를 공공 부문에서 대규모로 조성해 실제 전력 계통 안전성에 기여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축하려는 계획”이라며 “REC 가중치가 높아 잦은 충·방전이 생기고, 이 때문에 계통 부하가 걸리는 등 당초 기대했던 효과가 구현되지 못했다는 판단 아래 정책 방향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연계 ESS REC 가중치가 신설된 건 2014년 9월로 풍력 연계에 5.5가 부여됐다. 이후 2016년 9월 태양광 연계 ESS의 REC 가중치가 5.0으로 신설됐다. REC 가중치는 높을수록 판매단가를 높여주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사업자의 수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설비 관련 REC 가중치가 0.7~3.5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그동안 ESS 산업을 키우기 위해 상당한 특혜를 제공해 온 셈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책 연속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특히 이번 정부가 에너지 전환 정책을 시행하면서 ESS 보급에 방점을 두고 사업장을 늘려 놓고, 한순간에 방향을 선회했다는 불만이 크다. 실제 2017~2019년 새롭게 설치된 ESS 사업장은 1347곳으로 이전 4년 동안 설치된 275곳의 5배 가까운 수준이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ESS REC 가중치가 0이 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부터 BMS·EMS 관련 회사와 EPC(설계·조달·시공) 업체 등 관련한 민간 산업이 한순간에 관련 경쟁력을 잃게 됐다”며 단계적 변화 대신 산업을 고사시키는 방향으로 간 이유를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업계는 화재로 인한 피로감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잦은 화재는 ESS 민간 보급을 확대해 온 정부로서는 부담 요소였다. 정부가 화재 조사단을 두 차례나 꾸려 지난해 6월과 지난 2월 조사 결과를 내놨지만, 화재 원인이 ‘복합 원인’과 ‘배터리 이상’으로 미묘하게 갈리는 등 논란도 낳았다. 조사 결과를 놓고 배터리 업계 등에서 반발이 많았고, 무리한 에너지 전환 정책의 결과가 아니냐는 책임 추궁도 꾸준했다.

산업부는 화재 발생은 부분적 이유였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오승철 과장은 “ESS의 목적이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방전하는 게 핵심인데, 충·방전을 반복하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게 이번 정책의 가장 큰 이유”라면서 “REC는 결국 국가 보조금인데,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면 방향을 빨리 바꾸는 게 낫지 효과성이 떨어지는 걸 지속하는 게 오히려 더 비난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반박했다.

업계에서는 민간 부문 ESS 보급을 중단하는 방향이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 정책과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그린뉴딜 정책에 따르면 정부는 태양광·풍력 발전용량을 지난해 기준 12.7GW 수준에서 2025년까지 3배 이상(42.7GW)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변동성’과 ‘간헐성’ 문제가 생겨날 텐데 ESS 없이 감당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다.

정부가 그린뉴딜 정책을 내놓으면서 ESS를 소홀히 한 측면도 있다. 산업부와 환경부가 지난달 16일 공동으로 내놓은 ‘탄소중립 사회를 향한 그린뉴딜 첫걸음’ 자료에는 ‘ESS’라는 단어가 단 한 번 언급된다. ‘녹색 선도 유망기업 육성 및 저탄소·녹색산단 조성’ 부문의 “연료전지, ESS 활용 등으로 에너지자립형 산단을 조성한다”는 내용이 전부다. 재생에너지 확대과 전기·수소차 133만 대 확보 계획 등 숫자를 내세운 분야와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민간 부문과 함께 ESS를 키워나갈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태양광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활용이라는 게 거대 기업이나 정부 주도보다는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이 해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며 “수요에 따라 충·방전 시간을 조절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잘 해내는 기업이나 개인이 혜택을 보는 방식으로 설계하면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산업부는 ‘분산에너지 로드맵’을 꾸려 이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민간 부문 ESS를 우대하는 방안도 이 로드맵에 담아 오는 12월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경훈 산업부 분산에너지과장은 “이번 로드맵에서 민간 부문 ESS 업계를 우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실제 전력 계통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 ESS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창완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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