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장 기간 합리화할 명확한 제도개선 필요
금융당국이 공매도 금지 연장 및 부분 재개를 발표한 가운데 '선거용 미봉책'이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한 달 반의 연장 기간을 합리화할 만한 명확한 제도 개선을 제시해야 하는 압박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금융위는 오는 5월 2일까지 주식시장 공매도 금지조치를 연장하고 5월 3일부터는 코스피200·코스닥150 주가지수 구성종목에 대해 공매도를 부분 재개한다고 지난 3일 발표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하자 6개월간 공매도 금지 조치를 의결했고 오는 3월 15일까지 6개월 더 연장했던 상태다.
금융위는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현 국내 주식시장 상황, 다른 국가의 공매도 재개상황, 국내 증시의 국제적 위상 등을 감안할 때, 공매도 재개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데에 공감했다"며 "다만, 전체종목을 일시에 재개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 재개함으로써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5일 녹색경제신문 취재 결과, 한시적 공매도 금지 기한이 다가오며 공매도 논란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위가 결정을 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금융위는 금지 조치를 한 달 반 연장하고 이후에는 부분 재개한다는 '절충안'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금융위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개인투자자의 승리로 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사실상 전면 재개라는 주장도 있다. 분명한 것은 공매도를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오는 4월 보궐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한 달 반이라는 기간을 연장함에 따라 선거와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는 모습이다.
개인투자자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의 정의정 대표는 이번 금융위 결정에 대해 "선거용 미봉책이라고 본다"며 "대형 종목에 공매도가 쏟아지면 지수 연동 상품에 연계돼 소형주까지도 하락 폭풍 영향권에 당연히 속한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제도 개선을 완벽하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매도를 재개하는 것은 개인들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도 금융위 결정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
IBK투자증권은 "시장 예상보다 빠른 결정을 통해 증시 변동성이나 수급 불확실성 확대를 조기에 차단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안소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1월 중순 이후 국내 증시가 과열 우려로 조정 국면에 진입한 상황에서 공매도 금지 연장은 지수 하단을 지지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판단된다"며 "매도 금지로 인한 외국인 투자자의 헷지 수단 제약 등 부정적 측면이 있지만 현재 지수의 하방 경직성을 형성하고 있는 개인 투자자들의 긍정적인 투자심리가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강대승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패시브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공매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강 연구원은 "글로벌 지수 산출기관인 MSCI, FTSE 등은 공매도 가능 여부를 시장등급 평가요소로 사용한다"며 "추종자금의 국내투자 금액이 28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공매도를 무기한 연장되거나 금지할 경우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권, 불법 공매도 사전차단을 위한 전산 체계 구축 의무화법 발의
정치권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입장문에서 "'제도보완 후 공매도 재개'라는 주장에 금융당국도 수긍하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이해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지난 4일 불법 공매도의 사전차단을 위한 전산 체계 구축 의무화법을 발의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일 페이스북을 통해 "불공정한 공매도 시장 근본적 수술 없는 상태에서 공매도 재개는 용인될 수 없다"며 "공매도 시장의 불공정성 바로 잡는 것보다 여당 선거 걱정하는 금융위가 참 딱하다"고 했다.
최근 증시 호황으로 고액자산가들의 주식자산은 더욱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증권이 10억원 이상 자산가 86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지난해 말 주식자산은 2019년 말 대비 평균 45.6% 증가했다.
그러나 증시 호황이 고액자산가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주식투자는 자산 증식을 모색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이자 희망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투자 열풍의 이면에 자리한 '빚투(빚내서 투자)' 등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30 세대의 주식투자 열풍은 특히 거셌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래에셋대우·KB·NH투자·한국투자·키움·유안타증권 등 국내 주요 증권사 6곳에서 개설한 신규계좌 723만개 중 54%(392만개)가 20, 30대 투자자 명의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5월 3일 공매도가 부분적으로 재개되면 실제로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공매도가 금지된 것은 지난해 3월인데 그 사이 개인투자자는 증시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할 만큼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금융투자협회, 코스콤 등 5개 증권 유관기관은 '공매도 사실은 이렇습니다' 자료를 내는 등 공매도 제도에 대한 불신 해소에 나서는 모습이다.
5개 기관은 "최근 SNS를 중심으로 국내 공매도 관련 제도에 대한 많은 비판과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제도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라며 "이러한 지적을 감안해 불법공매도 적발 시스템 강화, 시장조성자 제도 개편, 개인공매도 기회 확충 등 다양한 제도 개선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허위나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들도 있다. 가상적인 해외사례가 모범으로 제시되기도 한다"며 "이는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와 건전한 투자문화를 훼손할 것이다. 투자는 정확한 사실 확인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는 "공매도가 주가하락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이론적이나 실증적으로 타당성이 검증된 바는 없다"며 "공매도 투자자가 항상 이익을 얻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으로, 일반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공매도 투자자도 손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로 급한 불을 끈 셈으로 볼 수도 있지만 지금부터는 더욱 큰 압박이 기다리고 있다. 4월 선거를 앞둔 상태에서 한 달 반으로 설정한 금지 조치 연장 기간을 합리화할만한 제도를 내놔야 하는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불법공매도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4월 시행을 앞두고 있고 공매도 금지도 일단 연장했으나 공매도 부분 재개가 시작되는 5월 이전에 공매도 재개에 반대하는 이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공매도 재개 반대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의연 한투연 대표는 "대정부 투쟁까지도 나설 것"이라며 "공매도 재개에 찬성하는 이번 보궐선거 후보자 낙선운동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