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이노베이션, 이사회 통해 미국 사업 철수 가능성 시사…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 5조원 투자 계획 밝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양 사가 분쟁의 핵심 요소인 '미국'을 향해 각기 다른 전략을 펼치고 있어 업계의 이목을 끈다.
먼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판결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사업 철수설로 미국에 압박 메시지를 흘렸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은 5조원 규모의 추가 투자라는 '당근'으로 미국을 회유하는 모양새다.
12일 녹색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 진출을 두고 상반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11일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ITC 판결 관련 감사위원회를 열고 "문서 삭제 건에 덜미가 잡혀 가장 중요한 영업비밀 침해 여부는 제대로 검증해보지도 못했다"며 자사가 미국 사법 절차에 미흡하게 대처했음을 질타했다.
이사회는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의 요구 조건이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거나 사업 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이라면 수용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메시지는 비단 LG에너지솔루션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ITC의 결정에 대해 60일 이내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해당 판결이 전면 무효화 되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의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온전히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백악관에 배터리 분쟁에 개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도 SK이노베이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적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 잭슨카운티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총 26억달러(한화 약 3조원)를 투자하고 있다.
해당 공장의 예상 생산능력은 연간 21.5GW 규모로, 매년 30만대 이상의 전기차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전기차 전환 사업에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또한 약 3000명의 인력 채용으로 조지아주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이 같은 전망도 조 단위의 합의금 앞에서는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내년까지 배터리 사업에서 손익분기점(BEP)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만 426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액 역시 1조 6102억원으로 LG에너지솔루션 측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합의금 규모의 절반 수준이다. 합의금에 따라 사업의 운명이 크게 뒤바뀔 수 있는 SK이노베이션이 차라리 미국 사업 진출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다는 관측이 여기에서 나온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감사위원회를 연 지 하루 만에 "오는 2025년까지 5조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에서만 독자적으로 70GWh 이상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추가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상반기 중으로 신규 공장 후보지 2곳을 선정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이번 투자로 직접 고용 인원 4000명,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입 인력 6000명 분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미국 완성차업체인 GM과의 합작법인 2공장 투자도 상반기 내에 결정할 계획이다. 미국 완성차업체 GM과의 합작법인 2공장 투자도 미국의 전기차 전환 가속화에 맞춰 친환경 산업에 선제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이 이번 투자 설명에서 바이든 정부를 언급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 후 본격적으로 그린뉴딜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전기차 전환 정책은 물론 미국산 전기차 배터리 우선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선제적 투자"라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이번 투자가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여기에서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 자체가 불투명한 만큼 양 사의 투자 의도를 논하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다"면서도 "거부권 행사가 이번 배터리 분쟁 합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임은 사실이고, 모두가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장경윤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