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계·보험업계 등 이해관계자 타협의 물꼬는 '국민 눈높이'로 봐야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 자주 들리는 말 중에 '국민 눈높이'가 있다.
여기서 국민은 종교나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일반 시민을 말할 테고 눈높이란 보편적 상식 수준을 일컫는 듯하다.
'국민'이라는 용어는 누구나 동일하게 이해하겠지만 '눈높이'는 처한 상황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해석되곤 한다. 당사자가 이해관계에 얽히면 상식적 수준을 벗어난 모습도 드러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쉽게 내뱉는 말이기도 하지만 청문회 등에서는 결정적 하자를 언급할 때 갖다쓰는 아주 매서운 말이기도 하다.
특히 새로운 법안의 재개정 때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법을 만들겠다"고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공청회도 활성화된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과정에는 국민 눈높이를 확인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지난 10일 오후 국회에서는 해묵은 과제인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한 입법 공청회'가 열렸다.
이 법안은 이미 지난 10년 넘게 수많은 논의 과정을 거쳤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도개선을 권고받았지만 그동안 헛바퀴만 돌고 있는 중이다.
개정안의 내용은 단순하지만 그 과정 속에 얽힌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는 보험업계와 의료계로 나뉜다.
현재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종이서류를 발급받아 팩스나 우편 등으로 청구하거나 사진을 찍어 보험사에 전송해야 하는 등 많이 번거롭다.
사회 전반적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를 주도하는 IT 강국에서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에 매여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불편 탓에 진료비가 소액인 경우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가입자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보험금 청구 포기'는 보험가입 의미가 사라진 것이고 보험료를 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즉 계약자 권리 포기로 보면 된다.
개정안에 담긴 청구 간소화 방안은 보험가입자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 전송을 요청하면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도록 의무를 부여하자는게 골자다.
보험업계와 이를 지지하는 소비자단체는 청구 간소화를 통해 보험소비자가 권리를 용이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도 "전 국민의 75%인 3900만명이 가입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더이상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미루기에는 송구스럽다"고 표현하고 있다.
대립하고 있는 의료계도 반대 명분은 분명하다. 의료기관이 서류전송 주체가 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이밖에 청구간소화에 대한 비용부담 이나 중개기관 등 명확한 반대 논리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에도 개정안 발의에 다수의 여야의원이 함께 이름을 올렸지만 법안 소위 논의 과정에서 일부 여야의원이 동시에 반대하기도 했다. 만장일치 관행인 법안소위에선 한 명의 반대만 있어도 법안은 계류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이해집단을 대표하는 분들이 서로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바쁜 걸음으로 여의도를 다녀가곤 했다. 이렇게 '허송세월'은 가고 있고 이를 지켜보는 일반 국민의 심정은 착잡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소에도 양 측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게 사실이다.
보험사고나 의료분쟁 시 소비자는 늘 약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보험사들의 적극적인 해결 노력은 부족했고 의료계의 정보공개는 소극적이었다. 해당 단체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에서 '소비자 신뢰 회복'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이번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건에서도 국민의 '법감정'과 '눈높이'는 어느 한 쪽을 편들고 있진 않을 듯하다.
단지 내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쉽고 편리한 시스템 정도이지 않을까.
그것이 법안 개정을 통해서건 현행 프로세스의 개선이건 상관없다는 것이다.
서로의 입장에 간극이 있더라도 '국민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올해는 타협의 물꼬가 트이길 내심 기대해본다.
윤덕제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