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순간’이란 무엇인가. 한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의 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선대의 말 한마디가 웅장한 울림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책에서 읽은 한 구절 또는 사소한 이벤트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별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기업인에게도 별의 순간이 있다. 이 별의 순간은 기업인 개인의 운명은 물론 국가미래까지 변화시키는 ‘터닝 포인트’다. 산업을 재편하고, 일반인의 일상과 사회의 미래까지 바꾸는 거대한 수레바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별의 순간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 회장의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애플의 아이폰을 보고는 스마트폰 시대에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카카오톡을 창업한다. 단순한 생각이 그에게는 카카오를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게 하는 터닝 포인트였다.
<녹색경제신문>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움직이고, 결정하는 주요 기업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오늘 그들의 성공을 가져온 터닝 포인트와 위기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 등을 다루는 ‘CEO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註(주)]
▲터닝포인트
포스코, 철강기업에서 친환경 소재기업으로 변신 중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세기적인 베스트셀러 '총·균·쇠'에서 인류 문명의 발달을 좌우한 세가지 중 하나로 '쇠(鐵)'를 꼽았다. 그런데, 이 쇠가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명제 앞에 죄인이 됐다.
쇠를 만들기 위해서는 용광로를 가동하기위해 많은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철은 자연상태에서는 녹이 슨 상태다. 녹슨 철을 환원하기 위해 탄소(석탄)를 투입해 이산화탄소(CO2)가 발생한다.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로 지구 온도를 높여 기후 변화를 초래하는 주범이다. 철강산업은 전세계적으로 연간 약 19억톤(t),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를 차지하고 있다.
철을 포기하는 것은 문명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 위기 앞에 포스코는 새로운 대안이 절실한 전환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지난 2018년 이 전환기를 이끌 리더로 최정우 회장이 선택됐다. 최 회장은 1983년 첫 직장인 포철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평생을 포스코에 몸담아 온 뼛속까지 철강맨이다.
최 회장의 대안은 비철금속사업을 확대하는 것과 기존 철강산업을 친환경산업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수소환원제철'이다.
최 회장이 CEO가 된 이후, 포스코그룹은 비철금속사업이 매출과 이익면에서 기존의 철강사업보다 더 커졌다.
또 하나의 대안인 수소환원제철은 용광로에 석탄을 가열해 만든 일산화탄소로 쇳물을 생산하는 현재 방식과 달리 수소를 이용해 산화철을 환원(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 순수한 철로 만드는 것)하는 기술이다. 부산물로 이산화탄소(CO2) 대신 물(H2O)이 발생한다. 물은 기후에 아무런 해가 없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철강업계가 사양산업화되면서 이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아 사실상 포스코가 유일하게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하는 실정이다.
▲ 성공과 위기
역대 최대 경영실적 전망과 수소환원제철 위한 막대한 투자는 부담
포스코그룹은 올해 역대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그룹의 모기업인 포스코는 무려 8조원 이상의 연간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그룹 전체로는 1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실적의 바탕으로 최 회장은 철강사업 의존도를 낮추는 데 부단히 애쓰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2분기에 매출 18조2930억원, 영업이익 2조2010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작년 2분기 대비 매출은 13.84%, 영업이익은 무려 1212.22%나 늘었다. 이는 1968년 창사 이래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또한 최근 증권가의 컨센서스에 의하면, 올해 매출은 지난해(57조7928억원)보다 대폭 증가한 71조 5589억원, 영업이익은 8조2334억원으로 전년(2조4030억원) 대비 4배 가까이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주력사업인 철강사업의 호조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이 미래먹거리로 준비 중인 2차전지사업의 필수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 소재사업이 착실한 진척을 보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전남 광양에 짓기 시작한 리튬추출공장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리튬 22만 톤, 니켈 10만 톤을 자체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공장은 2023년 완공 예정이다.
한편, 최 회장과 포스코가 해결해야 하는 첫번째 위험 요소는 수소환원제철이다. 상용화까지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측면에서도 막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오는 2030년부터 기존 용광로를 수소환원제철용 유동환원로와 전기로로 교체하는데 설비투자 29조원을 포함해 총 68조5000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최근의 그린플레이션, 미국의 테이퍼링 등 산적한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이는 막대한 비용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돕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2030년까지 6조7000억원을 투자해 산업계 탄소중립 전환을 지원하는 ‘탄소중립 산업 핵심기술 개발’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선정 여부를 심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과제
최정우 회장, 수소동맹 이끌며 수소경제 토대 다진다
최 회장은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위해 전 세계적인 철강산업의 역량을 총동원할 심산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지원은 제한적이고, 포스코 자체 역량만으로는 넘어야 할 산도 워낙 많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6일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을 개최했다. 전 세계 주요 철강사, 원료공급사, 엔지니어링사, 수소공급사 등 유관 업계와 에너지 분야 국제기구, 각국 철강협회 등 29개 단체를 비롯해 48개국, 1200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로 8일까지 3일간 진행된다.
그는 개회사에서 "철강공정의 탄소중립은 개별 국가나 기업이 단독으로 수행하기에는 버거운 과제이지만 여러 전문가들의 경쟁과 협력, 그리고 교류가 어우러져 지식과 개발경험을 공유한다면, 모두가 꿈꾸는 철강의 탄소중립 시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도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수소환원제철기술의 개방형 개발 플랫폼 제안 등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다양한 어젠다를 제시해 글로벌 그린철강 시대를 주도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최 회장은 국내 주요 기업들과 수소동맹을 맺고 핵심적인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앞서 지난 6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과 함께 수소기업 협의체 설립 방안을 논의했다.
4개 그룹은 앞으로 수소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인 기업들이 협의체에 참여하도록 힘을 쏟기로 했다. 수소기업협의체 공동의장은 포스코그룹을 포함해 현대차그룹, SK그룹 등 3개 그룹이 맡는다.
수소기업협의체는 CEO협의체 형태로 운영되며 정기총회 및 포럼 개최를 통해 국내기업의 투자 촉진과 수소산업 밸류체인을 확대하고 수소사회 구현 및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포스코그룹은 지난 5월26일에는 세계 최대 해상 풍력발전기업인 덴마크 오스테드와 ‘해상풍력 및 그린수소사업 포괄적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오스테드는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그린수소 생산시설도 구축하고 있는데 포스코가 이번 협력으로 해상풍력발전 단지 구축에 필요한 철강재를 공급하고 풍력발전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린 수소는 수소환원제철의 전제조건으로 볼 수 있다.
호주 로이힐과는 지난 8월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수소환원제철소 구축과 수소 생산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최 회장은 이미 지난해 12월13일 수소사업에 진출을 공식화하고 2050년에 매출 50조원을 내겠다며 “포스코가 미래 청정에너지의 핵심인 수소를 주도적으로 생산,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 탄소중립사회를 위해 국가 수소 생태계 완성에 기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작년 임원인사 및 조직재편을 통해 포스코 회장 직속으로 산업가스·수소사업부와 물류사업부도 새로 만들었다.
최 회장의 수소경제 리더로서의 꿈은 지난해 부터 이미 착실한 기초를 다져가고 있는 셈이다.
최 회장의 이같은 계획과 착실한 실천은 한국 제조업의 리더십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인류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을 한 단계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김의철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