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통합별관 신축공사가 2년 가까이 지체되고, 시공사인 계룡건설이 300여억원의 공사대금 증액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며 '기술형입찰제도' 문제가 또 한번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최근 공급난으로 건축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건축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발단이 됐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한국은행이 300여억원의 공사대금 증액을 하는 것은 적법한 계약행위지만, 결과적으로 추가 지출이 불가피한 상황을 살펴보면 '기술형입찰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30일 <녹색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기술형입찰 공사비관련 정보 상시 공개, 기술형입찰 평가위원 상시로비 부패 철저 수사, 평가의 ‘공정함’을 위해 가중치방식 폐지와 가능하다면 (가칭)국민배심제 평가 영역을 도입해야 한다"며 "현행제도는 예산낭비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초 한은 별관 신축공사는 조달청이 진행했다. 조달청은 지난 2017년말 2832억원을 써낸 계룡건설을 1순위 시공사로 선정했다. 2순위로 밀려난 삼성물산은 이보다 590억원 낮은 2243억원을 써내고도 떨어졌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2018년 10월말부터 11월초까지 감사에 착수해 2019년 4월 감사보고서를 발표했고, 이에 따라 조달청은 한달 후에 입찰공고를 취소했다.
하지만, 계룡건설이 이에 반발해 법원에 낙찰예정자 지위확인 등 가처분 신청을 내 승소했고, 이에 따라 2019년 11월 조달청과 다시 2804억원에 계약을 체결해 공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당초 2019년 완공 예정이었던 공사는 변경계약을 거치며 오는 10월6일로 두차례 연장됐다. 이같은 입주 지연으로 삼성물산 본관을 임대해서 사용하는 한국은행은 약 440억원 이상의 임대료 부담도 늘어났다.
당초 삼성물산이 써낸 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최소 589억원을 절감할 수 있었고, 변경계약 과정에 따른 공기 지연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물가상승에 따른 추가 공사비(300억원)는 대폭 줄었을 것이고 추가 임대료(440억원) 부담도 절감할 수 있었다. 이 금액을 합산하면 1300억원에 달한다.
신영철 단장은 "당시 법원의 판단에 중대한 착오가 있었다"며 "예정가격을 산정하는 경우에는 예정가격 초과 응찰자는 탈락되는 것이 관급공사의 일관된 원칙이었는데 법원은 이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신 단장은 "법원 판결대로라면 국가계약법령은 입찰자들이 예정가격을 수백억 내지 수천억원을 초과해도 된다는 것"이라면서 "사법부가 예산낭비 행태에 대해 ‘적법’이라는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약 590억원이나 더 써낸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하고도,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공직자들의 행태도 문제"라면서 "만약 공사비관련 정보를 상시 공개하면, 부패구조의 상당부분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신 단장은 "기술형입찰의 문제는 상시로비를 통한 평가과정 및 결과의 부당함이문제이므로 검찰에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며 "평가과정과 결과의 공정성을 높이려면 가중치평가방식과 강제차등점수제를 즉각 폐지하고 평가의 공정성 회복을 위해 (가칭)국민배심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미국 감사원(GAO)은 가중치방식이 기술점수 1점과 가격점수 1점을 같은 가치로 인정하는 단순합산방식으로 등가성 판단이 곤란해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제도지만, 우리나라는 가중치방식을 압도적으로 적용(약 95%)하고 있다. 여기에 전세계 유일의 강제차등점수제까지 결합시켜 예산낭비를 조장하는 셈"이라 했다.
그러면서 "기술형입찰의 공정한 평가를 위해 국민이 직접 평가를 수행하는 국민배심제 평가방식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의철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