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는 석학 이상 따야 대우...“대졸 출신은 나사 쪼기가 주업무”
-개발자가 자유로운 곳?...“눈치보기 바빠, 보고체계 다 지키면서 혁신 강요”
“참 보수적인 집단에서 혁신을 말하는 게 웃겨요. 불가능을 해내라고 하기 전에 내부 균형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삼성전자 경영진의 ‘조직 쇄신’ 의지와 달리, 내부 직원들이 체감하는 회사 분위기는 사뭇 괴리감이 있는 듯하다.
삼성도 애플·구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기업문화의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겉치장일 뿐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23일 <녹색경제신문>이 다수의 삼성전자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수년째 삼성전자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최근 심각하게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트렌드 변화를 계속해서 쫓아야 하는 업무 특성상 빠른 일처리와 결정이 매우 중요한데, 복잡한 보고체계에 막혀 일을 놓치는 경우가 파다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그간 수차례 인사제도 개편을 통해 비효율적인 회의와 보고체계를 간소화하고, 임직원들 간 수평적 소통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A씨가 느끼는 실상은 달랐다. A씨는 “일을 위한 일이 너무 많고, 아직도 수석급 윗사람들은 당장 필요한 일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기 위한 비효율적인 업무를 하는 데 머무르고 있다. 동기도 딱히 없어 보인다”라며, “밖에서 받는 평가만 애플과 구글을 따라가려고 하고 정작 직원들이 느끼는 업무 환경은 공무원과 다를 게 없다”라고 토로했다.
A씨는 끝없이 경쟁 구도를 강요하는 젊은 경영진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삼성은 젊은 임원진을 중심으로 수평문화, 자율근무 등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직원들끼리 경쟁만 부추기는 ‘젊은 꼰대’들이 많은 곳”이라며, “경쟁을 유발하는 업무방식 체계는 협업이 자유자재로 이뤄지는 요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말 삼성이라는 조직은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조직 개편이라 해도 오랜 시간 고인 물을 단번에 바꾸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삼성 사업의 초석이라 불리는 엔지니어 직원들은 어떨까.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자신이 삼성전자 설비 엔지니어라고 소개한 B씨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서 B씨는 “세부 부서마다 다르겠지만 설비 쪽이든, 공정 쪽이든 대졸 출신은 고졸, 전문대졸 출신과 나사 쪼는 게 주 업무”라며, “아직도 삼성에서는 석사나 박사 이상 학위를 따야만 엔지니어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설비기술 직무에 있다가 퇴사한 김씨(38)도 이 글에 공감을 표했다. 그는 “삼성에서 설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근무지가 너무 열악해 삶이 거의 삭제되다시피 했다”라며, “항상 을의 입장이었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직무순환에서 늘 불리한 위치였다. 엔지니어의 능력이나 공로에는 되게 인색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다는 개발자들도 회사의 보수적인 업무 환경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삼성에서 SW개발을 담당하는 C씨는 자신이 속한 부서에서도 보고를 위한 보고, 수직적이고 형식적인 보고체계가 매우 심하다고 지적했다.
C씨는 “직장 분위기 자체가 자율적이기보다는 윗사람의 눈치 보기에 바쁜 경향이 있다”라며, “시스템적으로 절차가 너무 많아서, 한번은 기획안을 최종 승인받는 데에도 중간에 거치는 과정이 너무 많다 보니 한참 동안 애를 태웠던 경험이 있다. 이렇게 꽉 막힌 집단에서 혁신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참 웃기는 일이다”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C씨는 삼성에 입사할 당시만 해도 큰 자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불통, 비효율적인 업무처리로 에너지를 낭비하다 보니 이제는 지친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물론, 대우는 확실히 좋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회사다”라면서도, “지금까지 이곳에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느꼈던 건 기업문화가 참 오래됐고 보수적이라는 점이다. 요즘 주변 지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기업이 부럽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고명훈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