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의료데이터 등 제약...“넘어야 할 과제”
비대면 경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국내 보험사들이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의료 마이데이터, 비대면 진료법 등 이를 위한 제도적인 기반은 빠르게 정비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성공적으로 입지를 세운 업계 소식이 하나둘 들려온다. 미국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의 헬스케어 자회사 ‘옵튬’은 지난 한 해 나 홀로 매출액 400조원을 거뒀다. 부푼 꿈을 안고 뛰어든 국내 보험사들의 현 주소와 한계, 미래를 짚어본다.
① 디지털 헬스케어에 빠진 보험사…국내외 현주소는
② ‘건강점수는 830점입니다’…KB손보 ‘오케어’ 시장 선두 나서
③ ‘비대면 진료 여전히 불법’…해결과제 산 넘어 산
국내 보험사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법 등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해외와 비교해 국내 보험사가 제공하는 헬스케어 서비스는 기초적인 수준이다.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 걸음 수 측정, 식단관리, 운동 연계 보험료 할인 등에 머물러 있다. 보험사 개별 역량 외 의료법, 공공의료데이터 등 제도적 제약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원격의료가 불가능하다. 의료법 34조 1항에 따르면 원격의료는 의료인과 의료인 간 행위로 규정된다. 의료인 대 환자의 원격진료는 불법이라는 해석이다.
이는 사업 확장 걸림돌로 작용한다. 국내에서는 플랫폼을 이용한 비대면 상담진료, 정밀 의료서비스 등이 불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용자와 의사가 상담할 수 있는 앱 ‘삼성헬스’를 미국, 중동 등에 출시했으나 우리나라에는 의료법에 저촉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팬데믹 기간 중 원격의료가 고성장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향후 연평균 31% 고성장을 보이며 2027년 기준 전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원격의료와 관련된 국내 사업이 불가능해 시장 규모가 미미한 상황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국회에서도 법안 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한국이 필요한 변화 중 하나는 비대면 진료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의료계가 이를 거부한다면 입법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의료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는 점도 문제다. 한국은 공공의료데이터의 가용성이 우수하고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다만 민간 기관에서의 활용은 제한적이다.
사용법적 근거는 마련됐다. 2020년부터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이 시행됐다. 가명 정보를 신용 정보 주체 동의 없이 이용 및 제공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2021년 한화생명을 비롯한 5개 주요 보험사가 국민건강정보 자료제공심의위원회에 의료데이터 이용승인을 요청했으나 위원회는 이를 거절했다. 개인정보 유출과 악용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부터 건강보험공단과 보험사는 공공의료데이터 활용 중재안 방향성 마련 논의를 지속하고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이미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고도화된 서비스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은 의료데이터 분석을 통해 희소 질환 고위험 환자를 사전 예측하고 조기 치료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일본에서는 고령화에 대응해 정부 주도로 개방된 의료데이터를 통해 건강나이 기반 보험상품을 만들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재작년 건보공단에서 거절당한 서류를 보완해 지난해 다시 제출했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며 “국내 보험사들은 여러 방면으로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도약하기 위해 의료데이터 사용승인은 꼭 넘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김세연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