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스마트 워치, 드론, 전기차, 웨어러블 전자기기. 이들의 공통점은 배터리 없이는 구동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차세대 친환경차로 '혁신의 아이콘' 테슬라의 자율주행 전기차를 비롯해 쉐보레 볼트, 현대차의 아이오닉처럼 이미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전기차의 성능은 배터리로 가늠된다.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거리가 전기차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배터리의 중요성은 스마트 기기와 전기차, 드론 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심박 조율기, 삽입형 심장박동 모니터기, 척추 신경 자극기처럼 인체 기관을 보조하거나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내형 의료장치에도 배터리는 필수다. 대부분 배터리 용량이 제한적이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터리를 교체하는 재수술이 필요하다.
다가오는 미래사회에서 배터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배터리는 한 번 사용한 뒤 방전되면 폐기하는 1차전지와 수백 회 이상 재충전해서 사용 가능한 2차전지로 구분되는데, 스마트 기기와 전기차, 의료용 장치 등에 사용되는 것은 2차전지다.
2차전지는 양극과 음극, 전해질, 분리막으로 구성된다. 양극과 음극의 전압 차이에 의해 전해질 내의 이온이 충‧방전 과정에서 분리막을 통과하며 양극 및 음극 소재와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게 2차전지의 핵심 구동 원리다. 이때 핵심 소재가 무엇이냐에 따라 배터리의 성능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2차전지 연구에 열중해야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차전지 연구는 투자한만큼 성과가 잘 안나오는 대표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차세대 2차전지를 개발하는 기업이 주도권을 잡는다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 한계와 차세대 배터리 개발 경쟁
현재 사용되고 있는 2차전지 중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은 리튬이온배터리다. 리튬이온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한다. 리튬은 금속 원소 중 가장 가볍고 가장 낮은 반응 전압을 가진다. 이론적으로는 단위 무게당 에너지 밀도가 매우 높아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기기에 리튬이온배터리가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리튬이온배터리를 스마트 기기들이 채택하기 시작하면서 노트북PC나 스마트폰이 더 작아지고 얇아졌으며 가벼워졌다.
하지만 리튬이온배터리를 적용하는 분야가 많아지면서 리튬이온배터리의 한계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기존 리튬이온배터리는 보통 양극을 산화물로, 음극을 흑연으로 구성하는데, 이러한 소재를 최적으로 구성해 이론용량 최대치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개발됐다. 전기차나 드론처럼 전기에너지 용량이 더 많이 필요한 응용 분야에서는 수명이나 출력, 안전성, 가격 등이 리튬이온배터리의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2016년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의 발화 사건으로 리튬이온배터리의 안전성 문제도 도마에 올라 있다. 갑작스런 충격이나 압력 변화에 전지 내부 구조가 변형되면 온도가 상승해 폭발할 수 있다는 위험성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온도가 낮은 환경에서 사용하면 갑작스럽게 방전되거나 사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전기에너지 저장 용량이나 충전 성능 등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리튬이온배터리의 단점이다.
최근에는 리튬이온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의 가격이 최고치에 올랐다는 소식도 전해져 리튬이온배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글로벌 엑스 리튬 상장지수펀드(ETF)'를 살펴보면 2016년 1월 20일 17.56달러에 거래됐던 리튬ETF가 2017년 1월 19일 26.20달러에 장을 마감하며 49.2% 상승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개념의 2차전지 기술 개발에 전 세계가 뛰어들고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특히 삼성SDI와 LG화학 등 기업 및 연구소가 한국이 리튬이온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독일, 미국 등 선진국들은 리튬이온배터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연구부터 리튬이 아닌 다양한 소재로 전극을 개발하는 원천기술과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차세대 배터리 앞당기는 기초연구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차세대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한 기초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전기자동차용으로는 전고체전지, 금속공기전지, 리튬황전지 등이, 전력저장용으로는 나트륨이온전지 등이 유망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차세대 전지들은 새로운 소재와 배터리 셀 내부 구조를 개선해 용량이나 수명, 에너지밀도,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게 목적이다.
이 같은 차세대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재의 특성을 이해하고 반응물질의 구조를 최적화하는 기초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선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고성능 리튬이온배터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리튬합금 음극 소재와 니켈-코발트-망간 양극 소재를 이용해 배터리의 용량을 높이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액체전해질의 가연성물질을 가공해 연소를 어렵게 하고 분리막 안전성을 확보해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리튬이온배터리 내의 전해질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토대가 되는 기초연구도 차세대 리튬이온배터리 개발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과 군산대 화학과 공동연구진은 리튬이온배터리의 전해질 내에서 리튬이온이 이동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1000조분의 1초 단위로 전해질 내의 분자 움직임을 포착해 전해질 내에서의 이온 움직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할 가능성을 열고 차세대 리튬이온배터리에 적용하기 위한 후속연구를 진행 중이다.
김동철 서강대 교수 연구팀은 지난 4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성능의 리튬이온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미세구조 설계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전지의 양극을 구성하는 양극재를 작은 구멍을 갖는 다공성 구조로 설계할 때, 리튬이온배터리의 성능을 의미하는 '비용량'이 크게 향상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고출력 사용 조건에서 다공성 구조 양극재의 비용량 손실이 기존의 단순 구형 양극재보다 최대 98%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꿈의 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활용한 대용량 배터리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IBS의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 유룡 단장 연구진은 제올라이트 주형과 란타늄 촉매를 이용한 나노주형 합성법을 활용해 마이크로 다공성 3차원 그래핀 합성에 성공했다. 이를 그래핀 기반 2차전지의 음극 소재로 활용해 정전 용량을 3배가량 높일 수 있는 대용량 배터리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고성능 저비용의 2차전지 및 연료전지 개발을 기대할 수 있는 연구 성과도 나오고 있다. IBS 나노입자 연구단의 성영은 그룹리더(서울대 교수) 연구팀은 저비용 고효율의 황과 질소가 도핑된 그래핀 합성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2차 전지 및 연료전지에 적용해 고성능 전극을 저비용으로 제조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2차전지는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전극 개발이 필요하고 연료전지는 값비싼 백금 촉매를 대체할 전극 개발이 절실하다. 그래핀은 전도성, 유연성, 내구성 등 탁월한 물리적 성질이 있어 전기화학 촉매나 배터리의 전극 소재로 성능이 우수하다.
성영은 교수 연구팀은 흔히 쓰는 시약인 가성소다와 헤테로 원자가 함유된 유기용매를 사용해 황과 질소가 도핑된 그래핀을 합성한 뒤 리튬이온배터리 전극에 적용해 성능을 실험했다. 그 결과 리튬이온이 전해질 내를 이동하는 거리가 단축돼 전기에너지 출력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도핑된 그래핀은 황과 질소의 도핑 함유량이 높고 비표면적이 넓은 장점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2차전지 기술 경쟁에서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특성을 높이고, 전해질과 분리막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는 차세대 2차전지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연구되고 있는 결과들이 차세대 2차전지 개발에 반영된다면 한국이 양산 배터리 시장뿐만 아니라 차세대 2차전지 시장도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료협조: IBS>
한익재 기자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