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사내벤처 제도 도입 속도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권 전반에 사내벤처 바람이 분다. 업권 간 경계가 불투명해진 '빅블러(Big Blur)' 시대에 신사업 동력을 찾기 위한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최근 금산분리 제도 개선에 대한 정치권 목소리가 높아지며 제2의 사내벤처 붐이 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내벤처 제도는 기업이 사내 자원을 활용해 신규 사업에 진출할 때 활용하는 전략 중 하나다. 주력 사업 강화에만 치우친 회사가 익숙하지 않은 부문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왼손잡이 전략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같은 제도는 기업가 정신을 제고하는 등 조직문화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90년대 조직이 커질수록 성장이 정체되는 ‘대기업병’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도입된 바 있다.
국내 최초 사내벤처 제도는 1997년 삼성SDS에서 시작됐다. 당시 만들어진 사내벤처 ‘웹글라이더’는 99년 네이버컴으로 법인전환했다. 현재 국내 대형 포털 네이버의 전신이다.
금융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신한카드다. 2016년 사내벤처 제도 ‘아임벤처스’를 도입했다. 사내공모를 통해 지원자를 선발해 최대 6개월간 기존 업무와 근무시간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한다. 또 보육기간 후 독립분사 결정 시 지분투자, 창업휴직 등을 제공한다.
지난 2021년 신한카드는 업계 최초로 사내벤처 ‘씨브이쓰리(CV3)’를 분사했다. 라이브커머스 상품 정보를 수집·분석해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을 운영한다. 법인은 모회사로부터 독립분사 이후 2억원의 지분투자 및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지원을 받았다.
2017년부터 정부도 ‘제2 벤처창업 붐’ 조성을 위해 사내벤처 창업분사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에 선정된 기업에겐 동반성장 지수 우대, 창업 지원금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지난해 금융권에선 한화손해보험, KB국민카드 등이 운영 기업에 선정됐다.
뒤늦게 제도를 도입한 금융권에서도 속속 성과가 나오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초 사내벤처 제도를 도입한 이후 연말 두 회사(‘송소담’, ‘딸기’)의 독립분사를 결정했다. 교보생명은 사원, 대리 직원을 담당 태스크포스(TF)장으로 임명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창업에 실패해도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조건도 제공한다. 회사 관계자는 “혹여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실패가 아닌 혁신의 과정으로 여겨 새로운 시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조직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잠잠하던 증권사에도 벤처바람이 분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달부터 사내벤처 아이디어 공모전 ‘KIS-Ventures’를 개최한다. 혁신 아이디어를 선발해 사업화 단계까지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 사외 연수 프로그램을 포함한 맞춤형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한국투자증권 정일문 사장은 "자유롭게 제안하고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한국투자증권의 역동적인 조직문화가 ‘KIS-Ventures’의 모태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수렴하여 신사업 추진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내벤처가 성공하기 위한 일차적 조건으로 독립성이 꼽힌다. 모기업 테두리 안에서 성장하는 구조인 만큼 사내 영향력이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객관적인 평가 등이 이뤄지지 않을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KDB미래전략연구소 한상목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 및 금융회사에서 사내벤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기업의 테두리안에서 성장하는 사내벤처에 대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보장해야 한다”며 “(구글, 애플의 사례와 같이) 내부직원은 사업제안을 통해 기존 업무에서 일정 기간 배제하여 독립적인 프로젝트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육성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윤화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