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정말 '의지'의 문제였을까. 문제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약에 일부 우려와 반발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대통령의 의지에 화답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인천공항의 1만명 정규직 전환, SK브로드밴드의 5189명 정규직 전환 소식이 문 대통령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발표됐다. 오보로 확인되긴 했지만 LG유플러스의 2500명 정규직 전환 뉴스도 화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1차 협력업체가 2차 협력업체에 결재하는 대금을 30일 내 현금지급으로 하는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이밖에도 금융권, 유통업계 등도 비정규직의 전환 및 처우 개선과 대우를 어떻게 해야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역시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던 통신비 기본료 인하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통신사들이 고민에 빠졌다는 기사들이 쏟아졌고, 기본료 인하가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란 숫자들이 제시됐다. 그럼에도 통신사들은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정부 기조에 맞춰 다양한 방안 마련에 고심중이다.
이 모든 일이 대통령 취임 후 보름 안에 있었던 일들이다.
비정규직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물론 전에도 임시직, 비정규직은 있었지만 현재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진 않았다. '95년 기사를 찾아보니 노동자의 10.3%가 비정규직으로 10%를 상회해 우려가 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2016년 8월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44.3%로 870만명에 달했다.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66%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비단 노조 뿐만이 아니라 시민단체, 정치권, 학계 등에서도 꾸준히 요구해 온 과제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 약화, 경영 부담 등을 이유로 정규직 전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대규모 정규직 전환시 발생할 퇴직금 등의 비용이 경영을 악화시키고, 이는 결국 투자할 여력이 상실되므로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이 모든 이유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뒤집어졌다.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해 고용 불확실성을 해소하면, 생산력이 높아지고 결국 서로 상생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 내수가 진작되면 기업 입장에서도 유리하다는 점도 있다.
그동안 비정규직을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며 받았던 비난에도 당당했던 기업들이 정권이 바뀌자 한껏 몸을 낮추는 모습이다. 경영상의 어려움보다도 세무조사나 공정위가 더 무서운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5월 취임을 가능케 했던 발단인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10대 그룹 총수들과 임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경제수석이나 대통령이 요구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그렇다면, 기업인들은 왜 정권의 눈치를 봐야만 할까. 보수 정권이 자금 출연을 요청하면 하는대로, 민주 정권이 개혁을 요구하면 하는대로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
최근 내정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말이 가장 적절한 대답이 될 것 같다. "법을 잘 지키면 된다"
백성요 기자 sypaek@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