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또 하나의 과제'가 생겼다. 오는 2월 5일 열릴 항소심 선고공판을 앞둔 현재 삼성 계열사에 민주노총 계열 다수노조가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노조 경영을 원칙으로 해 온 삼성과 이 부회장이 지주사 전환(순환출자 해소), 금융계열사 지분 정리 등과 더불어 풀어야 할 과제다.
31일 노동계에 따르면 현재 삼성 계열사 중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다수노조로 임금단체협상(임단협) 대표노조가 된 곳은 삼성에스원과 삼성웰스토리 두 곳이다. 다수노조는 아니지만 삼성엔지니어링 노조도 민주노총 소속이다. 엔지니어링은 지난해 3월, 에스원은 8월, 웰스토리는 10월에 각각 설립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2월 이후 순차적으로 민주노총 소속 노조 세 곳이 잇따라 출범했다. 삼성 계열사의 첫 민주노조는 지난 2011년 출범한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에서 탄생했다. 이후 2013년 협력업체 수리기사들로 구성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설립됐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노조탄압 및 어용노조 논란이 꾸준히 있어왔던 삼성그룹에 민주노조가 생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라며 "다만 지난 사례에 비춰 임단협 등이 원만히 진행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한 기업에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 조합원 수가 과반수를 넘는 쪽이 임단협 협상에 나설 수 있는 단체교섭권을 갖게 된다. 삼성에스원의 경우 2000년 설립된 조합원 약 10명 안팎의 노조가 존재했지만 지난 17년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어용노조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작년 8월 설립된 에스원 민주노조는 조합원 40명을 확보, 다수노조로서 단체교섭권을 갖게 됐다.
이에 1938년 이병철 전 회장이 삼성을 설립한 이래 80년간 이어져 온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6년까지 삼성그룹에 존재했던 6개의 노조는 대부분 거의 활동이 없는 어용노조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민주노조의 출범은 삼성 역사상 최초의 정규직 단체협상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삼성그룹 역사상 첫 임단협인 웰스토리 임단협은 시작하자마자 파행을 맞았다. 심지어 사측과 노조측이 직접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삼성웰스토리측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단협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위임했고, 노조측은 사측이 직접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하며 3분만에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삼성웰스토리의 단협권 위임은 회사와 노조가 한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이에대해 삼성웰스토리 측은 "단협 경험이 없어 경총에 위임했고 합법"이라고 해명했다.
임단협을 앞두고 있는 삼성에스원에도 관심이 쏠린다. 에스원측은 17년간 아무 활동이 없던 노조와 새롭게 출범한 민주노조 양측 모두와 개별 단협을 진행하겠다고 밝혔고, 노조측은 노조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2월 5일 진행될 예정이다. 흔들리는 무노조 경영 원칙 이외에도 삼성그룹은 지주회사 전환, 금융계열사 지분 정리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했다.
재계에서는 그룹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고 현안에 대한 결단을 내릴 미래전략실도 해체되고 매주 진행되던 수요 사장단 회의도 없어진 상황에서,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선 이 부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내 대표 그룹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현안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오는 2월 5일 공판을 앞두고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백성요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