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21일, 전속고발권을 부분 폐지하면서 검찰이 독자 수사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자 재계는 긴장하는 분위기인 가운데 시민단체가 더 두렵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우선 재계는 전속고발권 폐지에 따라 무차별 고소고발에 따른 압수수색을 비롯 형사처벌 증가를 걱정하며 형벌조항 폐지와 연계해 해법을 찾기를 주문하고 있다.
고발이 남용되면서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부족한 검찰이 마구잡이식 수사를 할 경우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고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속고발권 폐지에 따라 시민단체들이 두렵다"고 밝혔다.
검찰 보다 시민단체의 파워가 더 세다는 이야기다. 현 정부 들어 시민단체의 위상을 한 마디로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시민단체가 막무가내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대화 자체가 힘들다"는 토로를 했다.
재계 관계자는 "시민단체들의 고소고발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부 우려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다만 기업들은 공정한 시장 질서가 중요한 만큼 표면적으로 시민단체를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눈치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상 형벌조항이 많은 나라는 없다”며 "전속고발권 폐지가 형벌조항 폐지와 연계해 해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원론적 답변을 했다.
사실 시민단체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전속고발권 폐지를 가장 강력히 주장해왔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공정위가 전속고발제를 통해 법 집행을 독점하면서 대기업의 갑질 등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을 해왔던 것.
최근 검찰 조사를 통해 공정위가 대기업에 대한 편의를 봐주고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퇴직 간부 18명의 불법 재취업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단체들의 비판은 최고조에 달했다. 공정위는 결국 전속고발권 폐지를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해서 공정위로서는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려웠다.
전속고발권은 기업의 담합이나 경제력 남용, 불공정 거래행위 등 공정위원회 관할 경제범죄 사건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고발 없이는 수사나 기소를 할 수 없는 제도였다. 특히 '자진신고자 처벌감면제도(리니언시)'와 관련해서는 공정위가 내부 지침을 통해 검찰의 고발요청권을 무력화시킨 상태였기에 검찰권은 작동하기 어려웠다.
전속고발권 폐지와 함께 검찰 수사는 물론 처벌도 강화된다. 정부는 담합에 부과하는 과징금의 한도를 2배로 올리기로 했다. 기업들이 불공정행위를 했을 경우 받게 되는 처벌이 훨씬 강화되는 것이다. 재계 또한 담합은 명백한 위법사항이고 근절돼야 하는 행위로 보고 있다.
이제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가 가능하다. 시민단체가 검찰의 권한 강화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앞으로 시민단체나 소액주주 등 누구도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공정위는 물론 검찰, 더 나아가 시민단체라는 복병을 만났다. 그 만큼 기업 담합행위 등은 이전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시민단체에 대한 두려움은 문재인 정부 운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민단체 출신들은 청와대와 정부 요직에 대거 진입했다. 지금까지 발표된 청와대와 국정자문위 인사 74명 중 38%인 28명이 시민단체 출신이다.
시민단체 출신들이 ‘성골’ 대접을 받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시민단체의 입김에 의해 인사를 좌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반면 경제 전문단체가 오히려 배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편, 공정위가 그간 전속고발권을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행사해왔다는 점에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법집행이 이루어질 질 것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검찰과 공정위, 두 기관에서 수사와 조사를 받으면서 추가적으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이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재계에서는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은 사안이 복잡하고 법리 해석도 까다롭다는 측면에서, 기업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공정위의 전문적인 심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에 관한 쟁점' 보고서를 통해 우리 법은 다른 나라의 경쟁법제와 비교해 형벌의 적용대상을 넓게 규정하고 있어, 전속고발권이 폐지될 경우 기업의 거래행위에 대해 과도한 형사적 제재가 이루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위법한 사항에 대한 처벌은 당연한 것이지만, 공정거래법의 전문성을 고려해 정상적 기업 활동마저 제약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법무부와 공정위는 세부 사항을 협의할 실무협의체를 운영하며 이번 합의안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시민단체들이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에 따른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은 현 정부에서의 위상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라는 점에서 앞으로 검찰 수사와 기업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