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피감 보험회사와 소비자와의 즉시연금 법적분쟁에 사상 첫 소송지원에 나섰다. 삼성생명·한화생명과 감독당국과의 갈등도 점차 커질 전망이다
3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삼성·한화생명이 즉시연금과 관련해 제기한 '채무 부존재 확인소송'의 당사자인 금융소비자들을 돕기 위해 최근 보험 전문성이 높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삼성생명이 제기한 소송의 경우 현재 서울동부지방법원에, 한화생명은 서울중앙지법과 동부지법 등 다수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금감원이 민원인 편에 서서 직접 소송 지원에 나선 것은 역대 최초다. 또, 민원인의 변호사 선임은 물론 소송 비용, 법원에 제출할 자료 등을 포괄적으로 지원할 계획으로 소송지원 범위 등 세부사항은 원장이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지원 한계가 따로 있지 않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원고와 피고 측 변호인이 법원에 준비 서면(변론 내용을 적은 문서)을 제출 중인 상황이라며 아직 첫 공판 기일은 잡히지 않은 상태다.
또, 민간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도 지난해 9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공동소송 원고단을 모집해 소비자 200명가량이 즉시연금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해당 소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과 남부지방법원에 각각 접수했다.
즉시연금(만기 환급형 또는 상속 만기형)은 최초 가입 때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면 보험사가 매달 이자(연금)를 가입자에게 지급하고 계약 만기 때 처음에 납부한 보험료 전액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지난해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21개 생명보험사를 대상으로 “즉시연금 계약자에게 상품 약관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덜 준 보험금을 일괄 지급하라”고 권고했었다.
이후 업계 1·2위 업체인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미지급한 채무가 없다며 작년 9·10월 금감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한 계약자들을 상대로 나란히 소송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당시 계약자들은 돌연 금감원 민원을 취하했다. 초대형 보험사와의 법정 소송은 소비자 개인이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지난해 10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즉시연금 문제로 집중포화를 받게 되자 재조사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금감원은 즉시연금 미지급금 문제를 재조사해 국민이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요구하자 이같이 답변한 것이다.
당시 윤 원장은 “보험약관이 불투명할 땐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또, 정무위 의원들은 증인으로 출석한 이상묵 삼성생명 부사장을 향해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즉시연금과 관련해 약관에 만기보험금 재원을 차감한다는 내용이 존재하느냐"고 물었고 이 부사장이 “약관에 그런 문구는 없지만 산출방법서 내용을 따른다는 부분이 있어 사실상 약관에 포함될 수 있다”고 답하자, 김 의원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동”이라며 호통을 쳤다.
뒤이어 금소연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원으로 생보사의 즉시연금 환급예상금액을 조회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개발해 공개하고, 또, 2차 공동소송 원고단 모집에 나섰다.
업계추산에 따르면 만기환급 즉시연금 미지급금은 삼성생명만 5만5천명 4300억원에 달하고, 생보사 전체 16만건, 8000억~1조원에 달한다.
보험회사 입장에선 금액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보험회사별로 지난해 3분기이후 민원도 급증한 상태다.
지난해 삼성생명은 보장이율에서 미달하는 부분만을 보전해 주는 타협안을 제시했었고, 배상대상도 한정 한 바 있다. 삼성생명은 즉시연금 지급과 관련해 '패소시 소송 미참여자에게도 즉시연금을 지급하지만, 소멸시효 적용기간 3년 이내의 것만 지급'하는 단서가 달린 안내문을 발송하기도 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시민단체는 이를 공동소송과 민원 제기인원을 줄이려는 시도로 보았다. 위 타협안에 따르면 미지급금은 당초금액에 비해 대폭 줄어든다.
이와관련, 삼성생명은 국감에서 법원 판결을 모든 가입자에게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의원이 공개한 '즉시연금 지급 방안에 대한 삼성생명의 서면 답변'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법원 판결에 따라 분쟁조정 신청여부 구별 없이 연금을 추가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학영 의원실이 각 보험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모든 계약에 대해 즉시연금 추가지급을 결정할 경우 추가지급 원금은 9,545억원이나 상법상 3년의 소멸시효를 적용할 경우 2,084억원이 제외돼 최대 지급액은 7,460억원에 달할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법원판결로 보험사 책임비율이 결정되면 위 금액은 더 줄어들게 된다. 결국, 보험사 입장에선 법원판결에 의한 추가지급이 유리하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일단 소송전을 택한 만큼 현재로선 법원 판단에 따른 책임금액과 비율이 정해질 때 그에 따라 협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자살보험금 사태처럼 소멸시효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법원판결이 나오더라도 실제 지급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감독당국의 입장에선 금융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즉시연금 사태를 호락호락 넘길 수 없는 상황이고, 정보 비대칭성이 큰 보험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비자의 권익을 지켜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우기 금감원의 소송지원은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 결정에 대한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다만, 소송이 일단락 되더라도 유사사태의 재발 방지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과거 자살보험, 암보험 사태와 같은 일로 잃어버린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황동현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