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영웅이 있다. 다만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없다.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만이 대중의 신뢰와 함께 존경을 받는다. 미국의 감염병 최고 권위자이자 조 바이든 대통령의 수석 의료고문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올해 연말 미 행정부에서의 공직 생활을 떠난다. 그가 소장을 맡은지 38년 만이라고 한다. 대단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파우치 소장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입혔다.
파우치 소장은 1984년 NIAID의 소장으로 임명됐고,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후천성면역결핍증(HIV/AIDS)와 호흡기 감염, 에볼라, 지카, 코로나바이러스 연구를 이끌었다. 7명의 대통령에게 조언을 했고, 바이든 대통령의 수석 의료 고문을 맡고 있다. 그는 자신이 38년간 NIAID 소장으로서 7명의 대통령들에게 조언을 하는 엄청난 특권을 누렸다며 "저는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첫날부터 수석 의료고문으로 근무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81세인 파우치 소장은 2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오는 12월 NIAID 소장직 및 바이든 대통령의 수석 의료고문직을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몇 달 동안 저는 계속해서 제 모든 노력과 열정, 헌신을 현재의 책임에 쏟을 뿐만 아니라 NIAID가 리더십을 전환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파우치 소장은 특히 지난 2020년부터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에 있어 상징적 역할을 해 왔다.
파우치 소장은 올 연말 공직 생활은 마무리하지만 관련 분야에서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저는 현재 직위에서 떠나지만, 은퇴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50년 이상의 공직 생활을 한 후 제가 여전히 제 분야에 대한 많은 에너지와 열정을 갖고 있는 한 제 경력의 다음 장을 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원한 현역임을 선언한 셈이다.
미국에 파우치 소장이 있다면 한국에는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이 있다. 정 전 청장도 파우치 소장 못지 않게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우리 국민들은 정 전 청장이 어떻게 코로나에 대응해 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한국이 코로나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정 전 청장의 덕이 컸다.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 전 청장이 물러나 많이 아쉽다. 여권 일각에서는 정 전 청장을 복지부장관으로 밀었으나 본인이 고사했다고 전해진다. 앞서 청장 유임도 권유했으나 역시 고사했다고 한다. 우리의 관료 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 전 청장 같이 책임감이 강하고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파우치 소장처럼 평생 그 자리를 맡아도 좋다고 본다. 정 전 청장에게 국가를 위해 또 다른 역할이 맡겨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파우치 소장은 "연구와 혁신에 대한 과학과 투자의 힘 덕분에 세계는 치명적인 질병과 싸우고, 전 세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도울 수 있었다"고 했다. 두 영웅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아침이다.
오풍연 논설위원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