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윤석열 대통령은 동갑이다. 나도 법조를 친정으로 여기는 만큼 윤 대통령과 직간접 인연이 있다고 하겠다. 나는 1987년 가을 수습기자 딱지를 떼면서 법원 검찰을 출입하기 시작했고, 윤 대통령은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로서 첫 발을 디뎠다. 윤 대통령은 그 뒤 강릉지청, 성남지청을 거쳐 서울에서 직접 만난 적은 없다. 내가 출입기자로 9년, 법무부 정책위원으로 3년을 있는 동안 현장에서 맞닥뜨리지는 못 했다. 그래도 같은 세대여서 동질감은 없지 않았다.
내가 윤 대통령을 눈여겨 보기 시작한 것은 그가 2019년 7월 검찰총장에 임명됐을 때부터다. 무려 다섯 단계나 뛰었기 때문에 의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검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까 우려아닌 우려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윤 총장은 무엇보다 뚝심이 있었다. 그가 가장 강조했던 것은 법치였다.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수사도 그것의 연장으로 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정권의 눈밖에 나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오풍연 칼럼을 쓰고 있던 터라 그런 상황을 칼럼에 고스란히 담았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심정으로 쓰기도 했다. 윤석열을 위해 쓴 것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권의 하는 짓이 못마땅해 내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기록으로 남겼다. 결과적으로는 윤석열을 두둔하는 성격을 띠게 됐다. 윤석열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던 칼럼이 ‘윤석열의 운명’이라는 정치비평서로 나왔다. 작년 5월 펴내면서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을 일찍이 점친 바 있다.
윤 대통령과는 검찰총장 때부터 소통을 해오고 있다. 둘이 동갑내기이지만 호칭은 달랐다. 윤 총장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나는 “총장님”이라고 불렀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도 거리감은 없었다. 지난해 3월 4일 총장에서 물러난 뒤로는 통화도 종종했다. 전화 통화는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보다 더 솔직할 수 있다. 한 번은 전화를 끊고 보니까 70여분이나 대화를 나눴다. 윤 총장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아는 것도 많았다. 그러니 대화가 지루할 수 없다.
대선 후보로 정치에 본격 입문한 이후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들 아니라고 할 때도 윤석열이 집 나간 이준석을 품고, 안철수와도 단일화를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윤석열의 사람됨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 때는 당선인의 초청을 받아 아내와 함께 참석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 이후에도 가끔 메시지를 주고 받고 있다. 소통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대인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지금 당장 어려워도 잘 풀어나갈 것으로 본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본 윤 대통령을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부디 성공하기를 빈다.
오풍연 논설위원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