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석 칼럼] 한전에 적자 강요하며 어떠한 지원 계획도 없는 정부, 정상인가?
누진제 개편시 한전 비용 부담 상승 당연... 요금 상승도 재정 지원도 묵묵부답
정부가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하면서 한전의 추가 비용 부담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지난 3일, ‘전기요금 누진제 TF(이하 TF)’가 마련한 누진제 개편(안) 논의를 위해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 전문가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TF는 1안으로 누진 체계를 유지하되, 여름에는 별도로 누진구간을 확대하는 '누진구간 확대안', 2안으로 하계에만 누진 3단계를 폐지하는 '누진단계 축소안', 3안으로 연중 단일 요금제로 변경해 누진제를 폐지하는 '누진제 폐지안' 등 3가지 안을 제시했다.
1안은 누진제를 유지하면서 누진구간을 확대해 소비자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지난 여름 한시적 실시된 정책과 유사하다.
2안의 경우는 전력 수요가 높은 여름철에는 3단계 구간을 폐기하고 1~2단계만 유지하는 안이다.
마지막으로 3안은 누진제를 없애고 단일요금으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1단계에 비해 약 35% 높은 요금제를 제시했다.
어떤 안이라도 다가오는 여름에 소비자의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이는 곧 반대로 전기요금을 받는 한전의 수입이 축소됨을 의미한다.
한전의 수익구조를 단순화하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발생시키는 구조다. 즉 발전사에서 전기를 싸게 구입할수록, 그리고 소비자에게 전기를 비싸게 팔수록 수익이 발생한다. 그러나 한전은 발전사로부터 구매하는 가격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도 결정할 권한이 사실상 없다. 즉 정부가 정한 금액에 따라 사고팔기 때문에 한전의 수익 여부는 정부 정책에 달려있다.
올해 1분기 한전이 6300억원의 적자를 본 이유는 전기요금은 고정돼 있지만,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사는 비용인 발전단가가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다. 주요 발전원별 발전단가는 석탄화력발전과 원전이 가장 저렴하고, LNG가 상대적으로 비싸다. 올해 1분기 원전 가동율은 예년과 가깝게 올라갔지만,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석탄화력 비중을 줄이고, LNG 발전을 늘렸다. 그 와중에 LNG 국제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한전은 역대급의 적자를 보게 된 것이다.
정부 방침에 충실히 따른 한전은 적자를 보게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전의 엄청난 적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번에 누진제 개편이 되면 한전은 약 3000억원의 추가 적자가 예상된다.
한전은 공기업이다. 공기업이 수익성만 추구해도 문제지만, 적자가 지속되면 국민경제에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다. 당장 한전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안전점검 및 설비 보수 예산을 줄이고 있다.
전력 현장에서는 올해에도 약 30%의 안전 예산이 감축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전 본사는 보수 예산이 줄어든 바 없다고 부인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정부 당국은 날씨가 더워지면서 전력사용량이 늘어나면 한전 적자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전력산업의 특성을 너무나 모르는 생각이다. 전력사용량이 늘어나 기저발전(화력 및 원자력)으로 전력수요가 감당이 되지 않으면 비싼 발전원인 LNG 등의 사용이 늘어나 전력수요가 높아진다고 한전의 수익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누진제를 통한 보전이 여름철 한전의 수익을 개선시켜 온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진제를 개편해 한전에 약 3000억원의 손실을 가져올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도 이를 보전할 전기요금 인상도, 재정지원 정책도 당장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는 정상이 아니다. 공기업을 정부 정책의 희생양으로 삼는 정권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한전의 정부 지분율은 18.2%에 불과하다. 산업은행과 국민연금을 정부 지분으로 추가한다고 해도 절반에 가까운 기관 및 일반 주주가 존재한다. 이들의 분노는 어떻게 잠재울지, 예산을 줄여 발생하는 전력설비의 노후화로 인한 대형사고 가능성은 어떻게 해결할지 정부에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