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가 불붙인 AI, 문재인·황창규 거쳐 이재용까지...'4차산업 피라미드의 지배자'
- 손정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 - 문재인 "인공지능 정부될 것" - 황창규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인공지능 접목" - 이재용 "마음껏 상상하라"
“바야흐로 인공지능 시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네이버의 연례 개발자 행사에 깜짝 방문해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인공지능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1일, 인공지능(AI)은 현재 대한민국 산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황창규 KT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국내 대표 ICT 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인사들이 정부의 이 같은 기조에 잇따라 화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인공지능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넘어 ‘새로운 문명’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강조한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엔 인공지능 열풍이 불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인공지능 경쟁력 강화’의 뜻을 밝힌 배경은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투자의 귀재’라 불리면서 일본 거부로도 유명한 손정의(孫正義·일본 이름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이 던진 화두가 현재 AI열풍의 시발점이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네이버 방문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가전략 발표 계획을 언급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의 결정판인 AI에 대한 지원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지난 7월 손정의 회장은 문 대통령과 만나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손 회장이 던진 인공지능 화두에 화답한 것이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발표하게 된 배경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AI를 기반으로 산업 및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구체적인 내용의 ‘국가전략’을 연내 마련하기로 했다.
손 회장은 지난 7월 문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접견했다. 문 대통령은 손 회장에게 ‘현재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을 물었고, 손 회장은 ‘인공지능’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문 대통령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겐 초고속 인터넷 망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노무현 대통령에겐 온라인게임 육성을 말했다’며 손 회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손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을 당시 한국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초고속 인터넷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며 “한국이 초고속 인터넷, 모바일 인터넷 세계 1위 국가로 성장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앞으로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강조했다.
◇황창규 KT회장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AI 접목”
문 대통령의 ‘AI 경쟁력’ 강화에 가장 먼저 화답한 곳은 KT다.
KT는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스퀘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AI 전문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AI(인공지능) 생활화를 이끌기 위해 4년간 3000억원을 투자하고, AI 전문인력 1000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문 대통령이 AI 국가전략의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인공지능 관련 대규모 투자계획이 나온 셈이다.
이필재 KT 마케팅부문장(부사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며 “‘AI 선진국, 대한민국’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고자 AI 컴퍼니 변신을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최근 강조하고 있는 AI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황창규 KT회장은 기자간담회 바로 다음날인 31일 임직원에게 '5세대 이동통신(5G) 기반 최고의 AI 컴퍼니로 나아갑시다'라는 메일을 보내 인공지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황 회장은 “지금까지는 '기가지니'를 중심으로 AI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제공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AI를 도입하고 5G 플랫폼으로 연결해 한 차원 더 높은 혁신적인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며 “혁신 기술을 통해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대한민국 통신 134년 역사를 주도하는 KT의 역할이자 사명”이라고 당부했다.
‘기가지니’는 KT가 개발한 인공지능 스피커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문 대통령의 발표에서도 등장할 만큼 AI 핵심 디바이스 중 하나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올해 5월 새벽 3시 40분, 혈압 증세로 쓰러진 어르신이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살려줘”라고 외쳤습다. 그 외침은 인공지능에 의해 위급신호로 인식되어 119로 연결되었고, 어르신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라며 “유사 사례가 이미 여러 건이고, 국가에서 독거노인 지원서비스로 지급한 인공지능 스피커가 하고 있는 역할이다”고 말했다.
KT는 AI 사업 확대를 위해 ▲글로벌(Global) ▲산업(Industry) ▲업무공간(Office) ▲미래세대(Education) 4대 분야에 치중한다는 계획이다. 기가지니를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가 이용하는 서비스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황 회장은 또 “언제, 어디서나, 모든 분야에서 AI를 통해 혁신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KT AI 에브리웨어' 세상을 만들어가자”며 “일하는 방식도 AI 기업에 맞게 업그레이드하자. 의사결정 프로세스도 데이터 중심으로 바꿔나가고 개별 사업과 조직을 뛰어넘는 통합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짚었다.
KT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인공지능을 전반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추후 정부의 인공지능 지원 정책을 면밀히 살펴야 하겠지만, 정부가 인공지능을 강조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소기업 제품에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어 정부와 협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라며 “AI를 통한 국가 산업 경쟁력 향상에 KT가 이바지 할 수 있는 사안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마음껏 상상하라”
삼성전자는 1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날 던진 키워드는 ‘상상력’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전자 창립 5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행사에서 지난 50년 동안 땀 흘려 헌신한 임직원들의 노력을 격려하고 “다가올 50년을 준비해 미래 세대에 물려줄 100년 기업이 되자”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50년, 마음껏 꿈꾸고 상상합시다”라며 “50년뒤 삼성전자의 미래는 임직원들이 꿈꾸고 도전하는 만큼 그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당부했다. “우리의 기술로 더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만듭시다”라고도 했다.
상상력은 문 대통령의 발표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 키워드다. 특히 ‘마음껏 상상하라’는 메시지는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 모두 동일하게 강조된 메시지다.
문 대통령은 “마음껏 상상하고, 함께하고, 도전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다”며 “개발자들이 상상력을 마음껏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고, 분야별 장벽을 과감하게 허물어서 과학자, 기술자, 예술가, 학생들까지 모두 협력하면 우리 인공지능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4차산업혁명 시대야말로 상상력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라며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의 문을 연 나라도 아니고, 세계 최고 수준도 아니다. 그러나 상상력을 현실로 바꿔낼 능력이 있고, 새로움을 향해 도전하는 국민이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런 와병에 든 이후 이듬해 메르스 사태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적은 있지만 삼성전자 임직원에 직접 메시지를 보낸 것은 1991년 경영에 첫 발을 디딘 이후 처음이다.
창립50주년이란 기념비적 행사에서 문 대통령과 동일한 키워드를 강조하며 기술력을 강조한 지점이 재계에선 흥미롭다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의식한 듯한 내용과 단어들이 이재용 부회장의 발표에서 많이 등장했다”며 “현 정권 기조에 화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세계 IT기업의 흐름 ‘AI’...“문 대통령의 AI산업 육성은 몽상” 지적도
인공지능은 세계의 주요 IT기업들이 주목하는 기술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4차 산업혁명을 촉발하는 핵심동력으로 인공지능을 꼽고 있다. 구글ㆍ마이크로소프트(MS) 등 IT 글로벌 선두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실제로 MS는 지난 7월 인공지능 연구소 ‘오픈(Open) AI’에 10억 달러(약 1조1779억 원)를 투자해 일반AI(AGI)를 연구 계획을 발표했다. AGI는 인간이 행동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AI를 말한다. 구글의 딥마인드가 AGI의 대표적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같은 추세에 맞춰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분야에 올해보다 50% 늘어난 1조7000억 원을 배정했다”며 “기업들이 경쟁력 있는 분야에 자신 있게 투자하고 빠르게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계에선 문 대통령의 전략이 너무 늦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네이버 개발자회의에 참석해 AI산업 육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AI산업에 관심 가진 건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기존 규제와 소득주도성장 놔두고 AI산업 발전 운운하는 건 실현 불가능한 몽상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AI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혁파와 소득주도성장 정책 폐기해야 한다”며 “AI산업의 대표격인 의료AI의 경우 가장 기초가 되는 원격의료와 데이터공유조차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거의 모든 AI산업이 비슷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민주당과 지지자들마저 설득하지 못하는 문 대통령의 AI산업 육성은 유행 쫓아 한 마디 거드는 립서비스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역시 AI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증강시키고 미래 글로벌 경쟁력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의 경쟁력을 뒷따라 가기엔 남은 숙제가 많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세계인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인재 경쟁력 지수’는 62.32점으로 조사 대상 63개국 중 33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