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품다] “우리 서로 직접 거래하게 해주세요! 네?”

기업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직접 거래 터줘야 시민단체 “산업부 녹색 요금제는 꼼수”

2020-04-07     정종오 기자
태양광

재생에너지를 사고 싶어도 자유롭게 살 수가 없다. 앞으로 재생에너지로 제품을 생산하지 않으면 수출 규제에 묶여 제품 경쟁력에 타격이 예상된다. 재생에너지를 맘껏 구매할 수 없으니 그만큼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 대규모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을 할 수 있는 ‘탄소 배출권’을 돈을 들여 사야 한다. 우리나라 현실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제도 도입 취지와 정책 기대효과에 반하는 형태로 녹색 요금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녹색 요금제는 화석연료 등이 아닌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때 웃돈을 내면서 친환경적 에너지를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비싸더라도 친환경 에너지 지원으로 나가자는 목적의식이 녹아있다.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는 “지금까지 나온 한국의 녹색 요금제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확대하지 않은 채 재생에너지 전력생산량만 중복계상하는 꼼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지 않으니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수요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권만 부여해 기후위기를 가속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부는 지난해 4월 녹색 요금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부터 기업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녹색 요금제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별도요금(녹색요금)으로 책정해 기업과 가정에 공급하는 정책이다. 정책 기대효과는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가 중요하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늘어나 총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시장에 신규 사업자가 진입하고 기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는 설비를 증설해 재생에너지 발전 총량이 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기업 수요에 맞추기 위해서는 공급량을 늘려야 하는 게 상식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는 재생에너지 전력 수요량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세계적 기업 230개는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공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전량(100%)을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RE(Renewable Energy) 100’이 그것이다. 세계적 기업들은 국내 수출 대기업에도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제품을 납품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제품을 구매하지 않거나 페널티를 물 수도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고 조달할 제도적 근거가 없는 탓에 ‘RE 100’ 캠페인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가 추진하는 녹색요금제의 가장 큰 허점은 ‘재생에너지 소비인증서(REGO, Renewable Energy Guarantees of Origin)’ 설계 부분이라고 시민단체는 지적했다. 녹색 요금제에서 기업은 한국전력으로부터 REGO를 사면 재생에너지 사용실적을 인정받는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전력을 생산해 한전에 공급하면 한전은 독점 매입한 재생에너지 전력에 기초해 REGO를 발행해 웃돈을 붙여 기업에 판매한다. 이런 시스템에서 기업이 REGO를 구매해도 재생에너지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시민단체는 분석했다.

중소 발전사업자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한전에 공급하고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Renewable Energy Certificate)를 발급받고 이를 팔아 수입을 챙긴다. 한국남동발전, 서부발전 등 500메가와트(MW) 이상 발전설비를 보유한 대형 발전사들은 총발전량의 7%(2020년 기준)를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야 한다. 의무 사항이다.

설비 부족으로 미처 채우지 못한 전력량은 민간발전사업자로부터 REC를 매입해 충당한다. 녹색 요금제안을 보면 REC 거래로 이미 정산이 끝난 재생에너지 전력에 대해 또다시 REGO를 발행해 기업에 팔 수 있게 된다. 이는 중소 태양광 발전소 등 기존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이 REC와 REGO로 이중 거래되는 시스템이라고 시민단체들은 분석했다.

그린피스 측은 “이 같은 꼼수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늘지 않고 서류상 재생에너지 전력 거래량만 늘어난다”며 “기후위기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전 세계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고 자칫 한국이 국제적 망신을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녹색 요금제를 도입해 REGO를 발급한다고 하더라도 REC가 발급된 발전설비는 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배출권과 연계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국내 기업이 REGO를 사 재생에너지 사용실적을 인정받고 온실가스 배출권을 얻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늘린다면 최악의 상황이 된다는 설명이다.

REGO 도입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총량은 늘지 않은 채 온실가스 배출량만 늘어나는 셈이다.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실질적으로 늘어난 부분에 대해서만 REGO를 발행해야 한다고 시민단체는 주장했다.

그린피스, 에너지전환포럼, 기후솔루션 등 환경시민단체는 지난해부터 녹색 요금제 대신 기업 전력구매계약(PPA, Power Purchase Agreement)을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기업 PPA는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전력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시장을 풀자는 것이다.

그린피스 측은 “(기업 PPA 제도는) 기후위기 대응에도 유효하고 기업에도 이득이 되는 제도”라며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를 빠르게 늘려 온실가스 감축에도 실질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점투성이 녹색요금제보다 기업 PPA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시민단체들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