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이용료②] 넷플릭스, 정부 무시에 ‘안하무인’...SKB, KT·LGU+침묵에 ‘고군분투’
- 넷플릭스에 순응한 LG유플러스ㆍ침묵하는 KT...정부는 뒷짐 - 넷플릭스 코로나19에 사용자 급증...“감당 안 되는 트래픽량” - 이용자 볼모로 ‘갑질’ 논란...정부 절차 무시하고 돌연 소송 제기
SK브로드밴드가 홀로 총대를 멨다. 넷플릭스와의 소송 얘기다. 업계에선 “국내 인터넷 사업이 외국 기업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곳은 SK브로드밴드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넷플릭스 한국법인 넷플릭스서비스코리아는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이 넷플릭스가 인터넷망 운영·증설·이용에 대한 대가(망 이용료)를 SK브로드밴드에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판단해 달라는 취지다.
이번 분쟁은 지난해 8월 방송통신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페이스북이 제기한 행정소송 이후 다시 한번 불거진 ‘망 이용료’ 갈등이다. 당시 법원은 1심 소송에서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인터넷 서비스 유지의 책임이 콘텐츠제공업자(CP)가 아닌 인터넷통신사업자(ISP)에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글로벌 기업들은 내지 않는 망 이용료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소송은 그 결과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이 정상화될 수 있을 분기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녹색경제신문은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의 쟁점을 두 편에 걸쳐 다루고자 한다. - 편집자 주
<[망 이용료➀] 홀로 총대 멘 SK브로드밴드...넷플릭스 "이익은 우리만, 비용은 너희가">에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의 신사적 소통, 그리고 대한민국 행정부를 무시했다. 콘텐츠를 무기로, 이용자를 볼모로 갑질을 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이용료 소송을 지켜본 통신업계 관계자의 평가다. 넷플릭스의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인터넷통신사업자(ISP)의 부담이 증가되고 있음에도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넷플릭스는 21일(현지 시각) 지난 1분기에 신규 가입자를 1577만명 유치했다고 밝혔다. 3개월 사이 서울시 인구(973만3655명)보다 많은 가입자를 만든 셈이다. 코로나19에 콘텐츠 수요가 증가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빠른 증가세다. 넷플릭스의 총 유료 가입자 수는 전 세계 1억8300만명에 달한다.
국내 성장도 가파르다. 2018년 40만명 수준이었던 넷플릭스 국내 유료 이용자는 최근 200만명을 넘겼다.
넷플릭스의 사업 핵심은 인터넷망을 통한 스트리밍 동영상 서비스다. 넷플릭스의 트래픽이 높아진다는 것은 수익이 증가한다는 의미와 같다.
ISP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트래픽 증가가 넷플릭스엔 수익이 되지만, 이들에겐 비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가 발행한 최근 자료를 보면, 오는 2022년 유튜브ㆍ넷플릭스 등 동영상 콘텐츠 관련 트래픽이 전체의 82%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LTE 데이터 트래픽 상위 10개 사업자 가운데 글로벌 콘텐츠제공업자(CP)가 유발하는 트래픽 비중이 67.5%에 달했다.
글로벌 CP들은 국내 통신사가 구축한 망의 절반이 넘는 트래픽을 사용하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던 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어떠한 비용도 ISP(통신사)에 제공하고 있지 않다. 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망 이용료를 내는 점과 사뭇 대조되는 지점이다. 네이버는 연 700억원, 카카오는 연 300억원 정도의 망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이는 현재 인터넷 시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SK브로드밴드는 이를 해결하고자 넷플릭스와 계속해서 소통해왔다. 넷플릭스 콘텐츠로 인해 발생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 과정을 두고 “SK브로드밴드의 신사적 소통에 넷플릭스는 안하무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지적한다.
SK브로드밴드는 2017년부터 무려 9차례에 걸쳐 넷플릭스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묵묵부답이었고, 결국 SK브로드밴드는 지난해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망 이용료 갈등을 중재해달라는 재정 신청을 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넷플릭스는 현재 비용 발생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협의 과정에서 바로 돈을 요구한 게 아니다”라며 “과도한 트래픽 발생을 어떻게 함께 해결할지 고민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방통위의 중재 결과는 오는 5월에 나올 예정이었다. 넷플릭스가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낸 시점은 4월13일. 지난해 11월부터 반년가량 이어오던 절차를 무시하고 법적 다툼으로 끌고 갔다. 일각에선 방통위 중재 결과가 넷플릭스에 불리하게 나올 것으로 판단되자, 소송을 제기했다고 해석한다.
넷플릭스 측은 소송을 제기하면서 “SK브로드밴드가 인터넷 접속을 대가로 소비자에게 요금을 납부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콘텐츠사업자에게 또다시 망 이용료를 요청하는 것은 이중청구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CP사의 역할은 콘텐츠, 망의 품질 관리는 ISP의 의무라고 선을 긋고 있다. 넷플릭스가 이 같은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것은 콘텐츠 이용자들을 무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이용자 중 일부는 “트래픽 증가로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이용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인터넷 업체를 바꾸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넷플릭스는 이를 믿고 SK브로드밴드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업체별 네트워크 속도를 주기적으로 공개하며 갈등을 부추긴다. “지난 2월 황금시간대 속도는 LG유플러스에선 평균 3.94메가비트(Mbps)이지만, SK브로드밴드는 2.25Mbps 정도”라는 식으로 업체별 순위를 매긴다.
이런 고압적 태도에도 국내 통신사들은 맥을 못 추고 있다. 넷플릭스에 분쟁 없이 받아드리는 것이 가입자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계산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의 방식에 다소 순응한 모습이다. 2018년 11월 중순부터 IPTV에서 넷플릭스 콘텐츠를 독점 제공하는 계약을 맺었다. 또한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 대신 제시한 캐시서버(OCA)를 무상 설치도 받아들였다. 망 이용료 분쟁에 나설 이유가 없는 입장인 셈이다.
KT는 망 이용료 부분에서 침묵하고 있다. 통신3사 중 해외 망이 가장 여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넷플릭스와 적극적으로 분쟁에 나서지 않고 물밑 협상을 하는 것이 사업적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새다.
SK브로드밴드는 KT와 LG유플러스와 달리 "이번 기회에 새로운 사업적 룰이 마련되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SK브로드밴드는 과거 페이스북과 망 이용료 갈등에서도주도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때의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CP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지금 현 상황은 ISP에만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일각에선 SK브로드밴드가 이번 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에 대해 "모기업인 SK텔레콤이 넷플릭스 대항마로 만든 토종 OTT ‘웨이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SK브로드밴드는 이에 대해 "경쟁사도 OTT를 가지고 있다. 웨이브를 방어하기 위해서 분쟁에 나선 것이 아니다. OTT 고객 확보는 콘텐츠가 중요한 부분이지, 망 이용료와 관련이 없다"며 "더욱이 SK브로드밴드는 웨이브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다. 이번 분쟁에 대해 사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있지만, 글로벌 CP와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소송은 국내 ISP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SK브로드밴드만 총대를 멘 격이 됐다.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도 기대할 수 없다. 해당 문제의 관련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현재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21일 '2020년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바로 잡겠다기보다 바로 잡히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다른 나라들도 열심히 대응하고 있기에 다른 나라와도 협력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접적인 개입엔 선을 긋고, 방통위 등 부처 간 협력을 강조하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넷플릭스가 방통위 절차를 무시하고 소송을 제기한 점, 범부처들의 소극적 태도 등을 들어 일각에선 “넷플릭스의 안하무인 태도에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현재 인터넷 환경은 ISP가 부담을 모두 떠안는 불합리한 구조이고, 이는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역차별 등 다양한 이슈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업계는 물론이고 정부도 함께 고민할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