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재용 부회장, 사과문 통해 경영 세습 중단 선언...발렌베리 가문 체제 도입 시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4세 세습 경영’의 종식을 선언했다. 재계에선 이를 두고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 체제를 염두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은 6일 오후3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이 기회에 한 말씀 더 드리겠다”며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래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다”며 “경영환경도 결코 녹록치 않은데다가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제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삼성은 대표적인 오너 그룹이다.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에 이어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3대째 이어오고 있는 경영 세습을 4세엔 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경영권 세습 중단’ 언급을 두고 ‘발렌베리 가문식 경영’이 삼성에 도입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발렌베리 그룹은 1856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창업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으로 시작했다. 현재 스웨덴 국내 총생산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기업이다.
발렌베리 그룹은 발렌베리 가문이 160여년간 5대째 가족 세습을 이어가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지주회사 인베스터를 통해 자회사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는 가문의 원칙에 따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로 유명하다.
발렌베리 그룹은 전자·통신·자동차 등 100여개 기업을 운영 중인데, 이 원칙에 따라 이 계열사의 경영을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있다. 5대에 걸쳐 경영권을 세습했지만, 기업별 독립경영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지배구조 체제를 구축해 사회적 존경을 끌어냈다. 기업적 이익을 가문에 축적하지 않고 사회로 환원하는 구조도 유명하다.
발렌베리 그룹은 삼성그룹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그룹과 5G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적 교류도 활발하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방한한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과 단독 회동을 갖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도 지난 2003년 스웨덴 출장 당시 페테르 발렌베리재단 이사장(사망), 마르쿠스 회장, 야콥 인베스터 회장 등을 만나 기업 경영 시스템과 사회복지사업 등 사회환원 방안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두 가문의 교류는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삼성전자는 이미 전문경영인 체제를 일부 구축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인 김기남 부회장(반도체 총괄), 고동진 사장(스마트폰), 김현석 사장(가전)이 전문경영인으로 주요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번에 4세 경영 세습 중단 선언까지 이어지면서 발렌베리 가문 경영 체제를 도입할 것이라는 의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삼성을 둘러싼 환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시장의 룰은 급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와야 한다”며 “그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