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롯데 신동빈 대법 집유 확정 1년... '방향은 정해졌다, 문제는 속도'
2019년 10월 대법원 집행유예 확정 판결로 오너 부재 리스크 위험 벗어나 신격호 창업주 별세 후 한·일 롯데 완벽 장악... 친형과의 경영권 분쟁 승리 코로나19로 최대 피해... 유통·케미칼 양대 축 동시 부진에 식음료도 기대 이하 오래된 2인자 황각규 부회장 퇴진... 신동빈 원톱 체제 구축
지난해 10월 롯데그룹은 숙원이었던 오너 부재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했다.
공정위에서 지정한 롯데그룹과 동일인인 신동빈 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한 것이 뇌물로 판정돼 1심에서 기업 오너 중 유일하게 실형을 받았다. 그는 2018년 10월 2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요구에 응한 소극적인 뇌물'이라는 점이 인정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최종심을 통해 집행유예 4년이 최종 확정됐다.
형 확정 이후 '신뢰받는 기업으로의 변화'를 다짐했던 롯데와 신회장. 그 이후 1년 동안 그룹과 신회장 개인에게는 굵직한 사건 사고가 잇따랐다. 창업주인 아버지 신격호 회장이 사망했다. 특히나 올초부터는 코로나19 사태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황각규 부회장을 퇴진시키는 등 '음참마속'의 결단도 내렸다.
◆그날
2019년 10월 17일 대법원 앞, “신뢰받는 기업 되겠다”
1년 전, 신동빈 롯데 회장의 대법원 최종심을 앞두고 롯데는 물론 재계 전체에 긴장감이 돌았다. 롯데와 재계는 2심 판결에 문제가 없는 만큼 대법원에서도 집행유예가 유지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복역했던 2018년 수많은 투자 계획이 ‘올 스톱’되면서 경영 위기를 초래했다. 설상가상으로 사드 미사일 기지로 롯데가 보유한 골프장 부지가 선정되면서 중국의 보복이 롯데를 겨냥했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불똥도 감수해야 했다.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대내외적 환경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혹시라도 오너가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는다면 위기를 헤쳐 나갈 동력 자체가 소멸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지난해 10월 17일 대법원의 판결은 롯데그룹의 운명을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롯데의 예상과 바람대로 대법원은 2심의 집행유예 선고를 확정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법원 앞에서 이병희 롯데지주 상무는 “대법원 판단을 존중하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도록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후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코로나19
신동빈 롯데 회장은 대법원 판결 이후 재구속의 불안을 완전히 떨치고, ‘뉴 롯데’ 플랜을 실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롯데그룹의 디지털 전환 속도 내기를 촉구하고, 황각규 부회장을 중심으로 경영되던 2인자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송용덕 부회장을 롯데지주 대표로 선임하는 연말 인사를 단행했다.
2019년 연말 인사의 파장은 컸다. 황각규 1인 체제가 깨졌다는 것 뿐 아니라, 특별한 과오가 없다면 임원의 2년 임기를 보장해주던 롯데의 기업 문화도 달라졌다. 철저하게 실적으로 판단해 1년 차 임원이라도 실적이 부진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임직원 모두 달라진 롯데를 실감하게 됐다.
‘파격’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과감한 임원 인사를 통해 2020년 새로운 롯데그룹의 도약을 노렸던 신동빈 회장에게 두 가지의 큰 변수가 닥쳐왔다.
2020년 1월 19일 롯데의 창업자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99세. 5대 기업 중 유일하게 생존한 1세대 기업인이었던 신 명예회장의 별세는 한국 재계의 한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다는 점과 동시에, 신동빈 회장에게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완벽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또 여전히 롯데의 경영권에 도전하고 있는 친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다른 의미의 '응전'이 필요하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신격호 롯데 창업자는 ‘무차입 경영’으로 유명했다. 그만큼 신중하고 안정적 행보를 보였다. 그룹사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2세 기업가인 신동빈 회장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중시하며 그룹의 확장과 변신에 매진했다. 신동빈 회장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는 시험대에 온전히 홀로 서게 됐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은 신동빈 회장의 완승으로 끝나는 분위기다. 결정타는 신격호 창업자 별세 후 지난 6월 일본 사무실에서 발견된 20년 전 자필 유서의 발견이다. 유서는 신동빈 회장을 한국과 일본 양국 롯데의 유일한 후계자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신동주 부회장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미 그룹 지분과 명분 양쪽에서 신동빈 회장을 이기기는 힘들어졌다.
이렇듯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을 확고히 하는 변수가 있었던 반면, 코로나19는 롯데그룹 전체의 생존을 의심케 하는 강력한 악재로 작용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화학과 함께 유통을 양대 사업축으로 갖고 있는 롯데는 그 정도가 강했다.
올해 2분기 기준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의 실적은 처참했다. 전년동기대비 영업이익은 롯데쇼핑이 14억원으로 무려 98.5%가 하락했다. 롯데케미칼 역시 329억원으로 90.5% 급락했다. 롯데호텔이 20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한 것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코로나19로 다른 식음료기업들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는 와중에 나온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의 부진한 실적은 코로나19의 탓 만으로 변명할 수 없는 참혹함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8월 ‘읍참마속’ 인사로 칼 빼든 신동빈... 단일 경영 체제 공고화
코로나19의 여파가 언제까지 갈까에 대해 전문가들이 설왕설래하던 지난 7월 14일, 신동빈 롯데 회장은 “내년 말까지는 코로나19가 계속될 것”이라면서 ‘위드 코로나 시대’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70% 경제가 ‘뉴 노멀’이 되는 시대의 지속을 예측한 신 회장은 곧바로 8월 롯데그룹의 몸통에 과감히 메스를 댔다.
황각규 부회장의 퇴진은 그 상징이었다. 8월 신 회장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2인자 황 부회장을 퇴진시키며 모든 임직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여전히 구체적이지 못한 위기의식과 느린 디지털 전환 속도에 불만을 강하게 표출한 것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룹의 브레인인 롯데지주의 구성과 역할은 축소 조정 중이다. 올 상반기 170명을 넘었던 롯데지주의 임원 수는 현재 140명으로 줄었다. 연말 인사를 거치면 100명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에 따라 해외 기업 인수 등 굵직한 신규 해외사업 역시 최소화될 가능성이 높다. 신 회장은 섣부른 해외진출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신 회장은 앞으로 황각규 부회장 같은 역할을 할 2인자를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 재계 관계자는 “황 부회장이 퇴진했다고 해서 송용덕 부회장이 그 역할을 담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회장 자신을 원톱으로 한 체제가 유력한 대안으로 꼽힌다.
대법원의 집행유예 확정으로 리스크를 극복했던 신동빈 롯데 회장의 1년은 위기와 대응으로 점철됐다. 그러나 사업과 경영이 으레 그렇듯이, 위기는 그대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기에 신동빈 회장이 바라보는 롯데의 방향과 그 진행 속도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