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이재용, 부회장 승진 8년... '도전과 역경'의 시간, '뉴 삼성'은 여전히 숙제
- 이재용, 8년째 부회장직 유지...부친 별세에도 회장 승진은 당분간 어려워 - 시스템 반도체 1위 비전 등 성적표로 경영능력 증명해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부회장직'에 오른 지 8년이 지났다. 삼성에 입사한 이래 가장 오랜 직함이다. 재계에서도 오너 경영인이 회장 아닌 동일한 직급을 이부회장만큼 오래 달고 있는 사례는 찾기가 어렵다.
이 부회장은 부친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우면서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왔다. 그 사이 하만 인수 등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국정농단 사건 등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난 10월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떴다. 이 부회장으로선 이제부터 진짜 '홀로서기'다. 선대회장의 공과를 넘어 '뉴 삼성'으로 혁신에 성공할 것인지, 이 부회장은 시험대에 섰다.
◆ 그날
삼성전자 입사 21년 만에 부회장 승진...성공과 시련의 연속 시작
2012년 12월 5일. 당시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이자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삼성그룹 후계자로 확정됐다는 의미를 지닌 인사였다. 이 회장의 두 딸 이부진과 이서현은 승진자 명단에 없었다.
삼성그룹 입사 기준으로 21년 만에 부회장 등극이다. 사장 승진 후 2년 만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91년 삼성전자 부장으로 입사해 상무보, 상무, 전무, 부사장과 사장(COO)을 거쳤다. 지난 2007년 전무, 2009년 부사장, 2010년 사장(COO) 등 1~2년 간격으로 승진을 했다.
당시 이재용 본인의 고사, 경제민주화 정서 등으로 승진 대상에서 빠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삼성 측은 경영권 승계와는 상관없는 경영 성과에 따른 승진이라고 강조했다. 경쟁사와의 관계 조정, 고객사와 유대관계 강화 등을 통해 스마트폰과 TV, 반도체 사업이 글로벌 1위를 지키는 데 기여한 성과주의 인사라는 것.
당시 이인용 삼성미래전략실 사장은 “삼성전자의 경영 전반을 지원하면서 창립 이래 최대 경영성과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며 “이재용 부회장은 앞으로 삼성전자의 사업 전반을 현장에서 더욱 강하게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그간 CEO를 보좌하는 COO(최고운영책임자) 역할이었다면 앞으로는 최고경영진으로서 경영 보폭이 확대된다는 의미다. 다만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대표이사직은 전문경영인이 맡음으로써 오너 일가가 경영전면에 나서지 않는 형태를 유지했다.
이 부회장 승진은 결국 ‘이재용 시대의 개막’으로 평가됐다. 재계는 주요 보직에 전진적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이 부회장 중심으로 후계구도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의 승진은 재계 3~4세 시대 본격화라는 측면에서도 관심이 모아졌다.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후계 구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
이건희 회장의 경우 지난 1979년 중앙매스컴 이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37세였다. 삼성은 부회장제를 신설하는 형태로 승진을 시켰다. 이 부회장의 경우 당시 나이 44세였다. 부친보다 7년 늦게 부회장에 오른 셈이다.
그럼에도 삼성 측이 경영권 승계 가속화에는 별개 입장을 보인 것은 이 회장이 건재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삼성 측은 “이건희 회장이 주 2회 정기적으로 출근을 계속하고 있고 연 100일 이상 해외출장을 다닐 정도로 일선에서 의욕적으로 경영을 해오고 있다"며 "승계 가속화라고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1968년 6월 서울생인 이 부회장은 지난 1981년 서울 경기초등학교, 1984년 청운중학교, 1987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 동양사학과 87학번으로 입학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학이 아닌 인문학을 택한 것은 이병철 선대회장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대학에서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하라는 뜻에 따랐다는 것. 그와 사촌지간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서울대 서양사학과에 진학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후 이 부회장은 부친처럼 일본과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95년 '일본 제조업의 산업공동화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2001년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이 부회장은 일본 게이오대학원에서 유학을 한 뒤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복귀했다. 해외법인을 돌며 주요 거래선들과 접촉했다. 이어 S-LCD 등기임원으로 계열사 경영에 첫발은 내디딘 이 부회장은 2008년 이른바 '삼성 특검' 당시 해외 순환 근무를 하며 '백의종군' 했다. 이 부회장은 브라질·러시아·인도·독립국가연합(CIS) 등 신흥시장과 미국·일본·유럽 선진 시장을 다니며 주요 거래선을 만났다.
이 부회장에게는 해외 근무가 글로벌 경영능력을 키울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됐다. 당시 애플, IBM, AT&T, 소니, 닌텐도 등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진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 이외에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엘 고어 전 미 부통령,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 등 미국 정계의 주요 인사들과도 이 시기에 친분을 쌓았다.
◆ 그후
이건희 회장 병석에 눕자 사실상 총수로서 경영 전면 나서
2014년 5월 10일.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석에 눕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어머니 홍라희 여사 등 가족들과 함께 매주 몇 번씩 병실을 찾았다. 이 부회장은 음주, 골프 등 취미생활을 중단했다. 한편으로 이 부회장은 아버지를 대신해 삼성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야 했다.
이 회장이 쓰러진 이후 이 부회장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2015년 만 47세 생일이었던 6월 23일, 이 부회장은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슈퍼전파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부회장은 “환자 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드리겠다”며 “관계 당국과도 긴밀히 협조해 메르스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완전히 해결되도록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시기 삼성그룹은 경영권 승계구도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2014년 말 삼성SDS와 제일모직이 잇따라 상장했다. 2015년 9월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 지분 16.54%를 보유해 최대주주가 됐다. 이로써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삼성물산 합병은 나중에 경영권 승계 의혹 수사로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0월, 삼성전자 입사 25년 만에 처음으로 등기이사에 올랐다. 등기이사는 회사의 중요 경영사항 결정 권한은 물론 법적 책임을 지는 등 책임경영을 의미한다. 당시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발화와 단종사태로 최대 위기에 놓였던 만큼 이 부회장이 주주 신뢰회복을 위해 전면에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
이 부회장은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이었다, 비주력사업은 매각하고 미래성장동력 부문을 찾아 인수했다. 2014년 11월 한화그룹에 석유화학 및 방산부분을 팔았다. 2015년 하반기에는 삼성SDI 케미칼사업부와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이후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프린팅사업과 해외업체 지분 등을 모두 매각했다.
이어 2016년 11월,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오디오회사 하만을 9조원에 인수했다. 삼성전자 M&A 사상 최대 규모의 딜이었다.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 미국 본사 하만 경영진과 만나 M&A를 성사시켰다. 인수는 성공적이었다. 인수 후 하만 매출은 2017년 7조1026억원에서 2018년 8조8437억원으로 늘었다. 2019년에는 연간 매출액은 10조800억원으로 10조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도 인수 후 최고치인 3200억원에 달했다. 하만은 자동차 전장 부문에서 삼성전자에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하만 이전에도 꾸준히 M&A를 이어왔다. 미국 신생기업 ‘루프페이’를 인수해 모바일결제 ‘삼성페이’를 출시했다.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와 디스플레이업체 차이나스타의 지분 등을 사들였다. 인공지능업체 ‘비브’와 클라우드기업 ‘조이언트’, 메시지 서비스기업 ‘뉴넷캐나다’ 등을 인수해 사물인터넷(IoT)과 스마트폰 사업 기술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게 가장 큰 시련은 ‘사법 리스크’였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2017년 2월 17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기 까지 352일간 수감생활을 했다. 이 부회장은 아직도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는 의혹이 경영권 승계 논란을 낳았다. 참여연대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자본시장법 위반과 분식회계 공동정범 혐의로 이 부회장을 고발했다. 지난 6월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함으로써 구속을 면했다. 하지만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중단 불기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이 부회장은 과거 삼성의 발목을 잡았던 반도체 백혈병,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등 문제도 마무리지었다. 삼성전자는 2018년 11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공장에서 발생한 직업병 피해자들에 사과했다. 이어 피해 보상 후속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을 이행했다. 2007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졌던 분쟁이 해결된 것이다. 앞서 2018년 4월에는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는 8천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직접고용(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 그리고, 앞으로
이건희 회장 별세...이재용 부회장, 재계 1위 삼성그룹 총수로서 진짜 시험대 올라
2020년 10월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계 1위 삼성그룹 총수로서 진짜 시험대에 올랐다.
이 부회장이 사실상 총수 역할을 맡은 지난 7년간 삼성전자는 양호한 실적과 선도적 투자로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코로나19 대재앙 속에서도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실적은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매출은 반도체 전성기를 넘어선 66조원, 영업이익도 12조원을 넘었다. 삼성전자에 대해 ‘한국경제의 소년가장’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 부회장 앞에는 온갖 난관이 산적해 있다. 고 이건희 회장의 ‘메모리 반도체 신화’를 넘어서야 한다. 이 부회장은 선두업체에 뒤진 시스템 반도체를 1위에 올려놓는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자해 1위로 도약한다는 ‘반도체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시스템반도체 육성이 쉽지만은 않다. 시스템반도체 사업의 주축인 위탁생산사업의 글로벌 점유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글로벌 기업과 전략적 제휴, 대규모 인수합병 등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이 중요하다.
이외에도 하만 인수로 본격화한 자동차 전장 사업,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추진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사업, 글로벌 5G 시대 개화에 따른 통신장비사업, 바이오시밀러와 위탁개발생산(CDMO)을 비롯한 바이오사업 등 삼성그룹의 신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이 부회장은 ‘사법 리스크’를 겪으면서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정농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사태를 거치면서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을 향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과거 삼성’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과 과오에서 벗어나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파기환송심 담당 판사가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느냐”고 화두를 던진 이유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 권고에 따라 이 부회장이 "자식에게 경영권 승계 않겠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이 부회장은 기술발전을 통해 개인은 물론 사회와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삼성전자에 노조가 설립되는 등 삼성그룹의 무노조경영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기념사에서 “같이 나누고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미완성 상태인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완성해야 하는 일도 과제다. 현재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 주요 계열사 지분은 확실한 지배력을 인정받기 부족한 수준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7%에 불과하다. 아버지 지분을 상속받는다 해도 상속세를 부담하고 나면 이 부회장의 지분은 많지 않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삼성그룹 지주사 체제를 완성해 지배력을 확보하는 등 해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법 리스크’ 탈출이 급선무다. 우선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을 마무리하고 불확실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파기환송심은 3차 공판까지 진행됐다. 다음 공판은 내년 1월 17일 열린다. 집행유예가 선고되면 일단 멍에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실형을 선고받으면 총수 공백을 맞아 삼성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진다. 비상경영체제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7년 12월 국정농단 항소심 재판 당시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마지막 회장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향후에도 회장 승진은 없을 것이란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부친 별세와 함께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에 대한 시나리오가 흘러나온다. 현재까지는 삼성그룹 내부에선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 논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전직 고위 관계자는 "국회에 제출된 지배구조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안) 통과 여부가 관건"이라며 "또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법적 결론이 나야 지배구조 개편 등 당면 현안 문제에 나설 것이다. 지금은 이 부회장 신상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 여유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회장 승진, 지배구조 개편 등을 추진하기 힘든 대외 환경이라는 것. 또한 기존 문제 해결 이후 현안을 다루는 것이 '삼성스타일'이라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올해로 8년째 부회장직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에 입사한 이래 가장 오랜 직함이다. 혹독한 시련과 함께 성공도 있었다. 이 부회장이 헤쳐가야 할 미래는 더 가시밭길일 수 있다. 다만 이 부회장에게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한다. 이 부회장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뉴 삼성’을 만들 것인지 대중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