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억 투자유치 밀리의 서재, 20년 전자책 험지 개척할까?
기술의 발달과 트렌드 변화에 책과 독서의 미래 갑론을박
약 5000년 역사를 가진 책은 가장 오래된 미디어다. 종이가 등장한지 2000년, 인쇄술의 보급 이후 최근 500년 동안 책은 곧 종이책이었다.
21세기를 앞두고 새 기술에 기반한 다른 책이 등장했다. 종이책이 그랬던 것처럼, 순식간에 책의 세계가 뒤바뀔 것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변화는 지지부진했다.
사실 그동안 책이 현대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여가를 즐기고 지식을 구하는 창구는 다양하고 넓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만 19세 이상 성인 6000명과 초등학교 4학년 이상 및 중고생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52.1%이다.
연간 독서율은 교과서나 학습 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 등을 제외한 일반도서를 1년에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2017년에 비해 2018년 10월부터 2019년 10월 사이 연간 독서율은 7.8% 줄었다.
독서량은 같은 기간 6.1권으로, 2017년에 비해 2.2권 줄었다.
성인에 비해 학생들의 독서실태는 그나마 선방하고 있는데, 같은 기간 연간 독서율은 90.7%로 2017년 대비 1.0% 줄었지만, 독서량은 32.4권으로 3.8권 늘었다.
대중들의 독서실태는 출판시장의 동향과 밀접히 연관된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한 2019년 출판시장통계에 따르면,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한 70개 주요 출판사의 2019년 총 매출액은 5조3826억원이었다.
2018년에 비해선 3500억원, 7.0% 증가했는데, 3년치 총 매출액을 비교해 보면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2017년은 4조9937억원에서 2018년 5조253억원으로 0.6%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2019년의 증가치가 좀 더 큰 폭이다. 70개 공시 출판사 중 48개사가 전년대비 매출이 증가한 반면, 22개사는 감소했다.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2019년 70개사의 총합이 4685억원이다. 평균 영업이익률은 8.70%.
2018년에 비해 매출 폭이 늘었던 점을 감안하면 영업이익도 크게 개선됐다. 54.4% 증가하며 수익성이 비교적 크게 호전됐다고 볼 수 있다.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전자책 독서율이 예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성인의 경우 연간 독서율이 16.5%, 학생은 37.2% 증가해, 전년에 비해 각각 2.4%p, 7.4%p 늘었다. 세대별로 봤을 땐 특히 20~30대들이 전자책을 즐겨 찾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오디오북 독서실태도 2019년 처음 조사됐는데, 연간 독서율이 성인 3.5%, 학생은 평균 18.7%를 기록했다.
전자책의 등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처음 등장한 전자책은 어언 2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성장·확산이란 표현을 쓰기 무색할 정도로 전자책 시장은 정체돼 있었다. 최근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태블릿, 전자책 리더기,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발달과 보급에 기인한다.
비록 최근의 실태조사 결과를 유의미한 변화라고 보더라도, 향후 전자책의 미래가 어떠할지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로벌 출판 공룡에서 이젠 유통 전 분야를 섭렵하고 있는 아마존이 지난 2007년 자체 전자책 리더기인 '킨들'을 출시한 이후 영국과 미국의 전자책 시장은 크게 성장했지만, 10년이 지난 2017년 즈음부터는 도리어 시장이 위축되고 다시 종이책 시장이 커지고 있다.
국내의 전자책 시장도 단정짓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하고 있는 출판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약 300여개 전자책 출판사의 연 매출액 평균은 1억4000만원에 불과하다.
독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다양한 종수 확보와 꾸준한 신간 콘텐츠의 발행이 필수적일 텐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089개의 출판사 중 전자책을 함께 발행하는 비율은 32.8%에 불과했다.
2018년 기준 전국 1096개의 공공도서관이 평균 자료구입비로 9191만원씩 썼는데, 이중 전자책을 포함한 전자자료 구입비는 643만원에 불과했다.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곤 하지만, 향후 전자책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는 미지수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급격히 발전한 모바일 기기들로 인해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최근의 트렌드인 구독경제의 한 형태로, 전자책 구독서비스도 저렴한 가격과 편리한 접근성 등을 무기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존 출판유통채널에서도 각자의 구독서비스를 출시하고 있으며, 아예 이를 본업으로 하는 기업도 등장했다.
전자책 구독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선보인 것은 '밀리의 서재'다. 2016년 7월 회사가 설립됐고, 2017년 10월 월 정액의 서비스를 정식 오픈했다.
2018년에는 배우 이병헌과 변요한을 모델로 TV 광고를 시작하며 더욱 주목받았다. 불과 1년이 채 안돼 기존 25만명 규모 회원을 100만명으로 늘리는 데 성공한 것.
또한 유망한 스타트업으로 주목 받으며 존재감을 뽐냈고, 그 결과 벤처캐피탈들로 부터 2018년과 2019년 약 283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0년 11월 기준 누적 회원 수는 250만명을 넘어섰다.
밀리의 서재 회원들은 한달 동안 평균 7.78권의 책을 읽는다. 2019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성인들의 경우 0.5권을 읽는다고 나타난 것에 비하면 대단히 높다.
밀리의 서재는 현재 약 10만권의 책을 월 9900원 정액에 무제한 읽을 수 있다. 제휴 중인 출판사는 700여곳에 이르며,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도 확대하고 있다.
오디오북 등 2차 콘텐츠도 보유하고 있으며, 2019년 10월에는 종이책도 함께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론칭하기도 했다.
밀리의 서재 관계자는 자사 서비스를 '독서 플랫폼'으로 규정했다. 이는 출판사와 제작사, 유통사 등으로 구분됐던 기존 출판시장의 패러다임과 분명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독서와 무제한 친해지리"라는 카피로 고객들의 독서습관을 디자인하겠다는 사업취지는 분명, 책을 만들고 유통하는 기성 기업들의 비즈니스 마인드와 차별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앞으로 갈 길은 멀다. 구체적인 투자유치 규모나 실적을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업계는 아직 밀리의 서재가 손익분기점(BEP)에 도달하지는 못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출판시장에 직간접적으로 발을 걸치고 있는 이들이나, 콘텐츠 생산자, 심지어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밀리의 서재 앞날과 책 구독서비스의 미래에 대해 갑론을박이 뜨겁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만큼 출판시장 파이를 키우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부터, 도리어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기존 시장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예상까지 다양하다.
저작자에게 더 많은 기회와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거라는 주장과 플랫폼을 빌려 새로운 '착취구조'를 만들 거라는 주장도 맞선다.
영화나 게임 등 규모로 게임이 안 되는 타 콘텐츠산업과 마찬가지로 '독서'라는 문화 자체가 '스낵컬처 콘텐츠'로 바뀔 것이란 비판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