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38세가 상무되고 46세가 사장되는 시대

추형욱 SK(주) 투자1센터장 임원승진 3년만에 SKE&S 사장 임명. 46세의 나이로 사장. 지혜경 LG생활건강 중국디지털사업부문장의 상무 승진. 38세 나이로 임원. 상실감보다는 개인 각성 계기로 삼아야

2020-12-04     김국헌 기자

연말 주요 대기업 인사가 무르익은 가운데 농협을 제외한 10대 그룹 중 삼성·SK·LG·롯데·한화·GS·현대중공업·신세계 등이 내년 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현대차, 포스코 등 인사를 앞둔 그룹들이 아직 상당수 남아있지만 이번 인사에서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역시 '더 젊어졌다'다. 


상징적인 승진인사 두 건을 꼽아보자면 추형욱 SK(주) 투자1센터장의 사장 승진과 지혜경 LG생활건강 중국디지털사업부문장의 상무 승진이다. 

추 사장은 임원승진을 한지 3년만에 SKE&S CEO가 됐다. 그는 1974년생이며 올해로 46세다.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이다. 46세는 일반적인 대기업에서 부장을 달아도 빠르다고 평가를 받기도 하는 나이다. 추 사장은 소재 및 에너지 사업 확장 등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혜경 LG생활건강 중국디지털사업부문장의 최연소 상무 승진도 화제였다. 지혜경 상무는 1983년생으로 올해 LG그룹 인사에서 가장 어린 38세 나이에 임원이 됐다. LG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전무 승진 4명, 상무 승진 11명 등 총 15명의 여성을 임원으로 발탁했다. 2018년 6명, 2019년 11명 대비 대폭 여성임원 승진규모가 늘어났다. 지 상무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리다. 

지 상무는 지난 4년간 중국 디지털 사업을 이끌며 LG생활건강의 중국 사업 성공에 공을 세웠다. 역량이 뛰어나며 급격히 진화하는 디지털 사업에 젊은 감성으로 발빠르게 대응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명의 승진인사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지혜경 상무의 경우 LG그룹 구광모 회장 체제 하에서 30대에도 역량만 있으면 성별에 관계없이 임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추형욱 사장 역시 SK그룹에서 능력만 있으면 40대에도 사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들은 오너가도 아니다. 과거에는 30대 임원, 40대 사장의 스토리는 오너가일 경우에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들의 승진은 일반인도 가능성이 있다고 입증했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는 올 연말 내년 초 단행될 2021년 임원 인사 특징이 담긴 키워드를 ‘S7’으로 요약 발표했다. 70년대생(Seventy) 전면 배치, 임원수 감소(Short) 뚜렷, 오너 세대교체 변환기(Shift) 진행형…임원체계 단순화(Simple)·외부영입 인재(Scout) 증가, 여성 사장 등 깜짝 인사(Surprise), 기회에 유연하게 대처할 S자형 인재 선호 등이다. 이처럼 내년 이후를 이끌어갈 국내 대기업들의 임원인사는 전반적으로 젊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4대 그룹 총수들이 40~50대로 젊어졌기 때문이 크다.  이전 1~2세대 경영인이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경영체제에서 회사의 급격한 성장을 이끌었다면 새롭게 경영 전면에 나선 3~4세대 총수들은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경영스타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

올해 만 52세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2014년 5월 부친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사실상 그룹의 경영을 진두지휘해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10월14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부친 정몽구 회장 대신 만 50세의 나이로 그룹의 공식 회장으로 취임해 3세 경영의 막을 올렸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018년 5월 고 구본무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룹 총수에 올라 4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구 회장은 올해 만 42세로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가장 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4대그룹 가운데 최연장자(만 60세)지만 이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주도하고 '젊은 감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본인들이 젊기 때문에 임직원들도 젊은 인재를 선호한다. 특히 4대 총수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구광모 회장은 자신과 함께 회사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를 크게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지혜경 상무의 파격적인 상무 승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젊어진 대한민국 재계에게 거는 희망은 크다. 빠른 상황판단 능력과 주어진 권한과 본인 능력을 바탕으로 국내 대기업의 한자리를 차지하며 회사 한 부문들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직원들은 예전보다 나아진 소통으로 더 활기차게 일할 것이다. 

그러나 임원을 다는 연령대가 젊어진다는 것이 개개인들에게 있어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100세시대가 열렸다. 한국인들의 평균 수명은 83세라고 한다. 오랫동안 일을 해야 삶을 건사할 수 있다. 그런데 임원을 너무 빨리 달아버리면 개인에게 있어서 굉장히 불안한 인사일 수 있다. 임원은 일반 직원과 달리 정년보장이 안된다. 1년 마다 계약이 갱신되는 경우가 많은 사실상 고소득 비정규직과 같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바로 짐을 싸야한다.

현재 재계에는 50대 부장들도 많다. 이들이 느껴야할 상실감도 상당할 것이다. 세대간, 성별간 갈등이 생겨날 수 있는 요소임에도 분명하다. 젊은 임원이 나이어린 부장을 부리는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날 테다.

코로나19 등 경영변수가 너무나 많아진 상황에서 보다 젊어진 임원들을 맞이하는 우리의 입장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직원으로써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시기에 우리는 적응해야 한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개개인들이 이러한 젊어진 인사로 상실감을 느끼며 한탄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