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정의선 경영, 先代와 어떻게 다를까...실용·개방 앞세워 미래 모빌리티 '선도'
현대차그룹, 산은과 '오픈 이노베이션' 협력체제 구축...유망 스타트업 투자 가속 정 회장, '개방형 협업' 강조하며 미래 기술 확보 '사활'...앱티브 합작 투자 등 삼성동 GBC 설계변경안, 실리파 정 회장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관측
신세대 오너인 정의선 회장의 행보가 현대차그룹의 변신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의 달라진 경영전략, 이것이 촉발할 미래사업 구도 변화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산업은행과 손잡고 설립한 ‘제로원(ZER01NE) 2호 펀드’가 좋은 사례다. 신세대 오너가 선대 오너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제로원(ZER01NE) 2호 펀드’는 미래 모빌리티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총 745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현대차 180억원, 기아 120억원, 현대차증권이 50억원을 출자해 펀드를 운용하고, 산업은행 200억원, 신한은행이 30억원을 출자해 투자자로 참여했다. 투자 대상은 미래 모빌리티, 친환경차, AI, 커넥티드카 등 미래 신사업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이다.
현대차그룹이 산업은행과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협력체계를 구축한 것은 그린 뉴딜로 점점 중요해지는 친환경 모빌리티 생태계에 기여 가능한 스타트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 측은 "글로벌 혁신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방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의 혁신 생태계 구축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펀드를 통한 스타트업 투자를 기반으로 미래 혁신 기술의 내재화를 도모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지속적으로 탐지해 나갈 예정이다.
이는 정의선 회장의 주요 경영 방침인 '개방형 협업'과 맥을 같이 한다. 정의선 회장이 자동차 제조사에서 ‘스마트모빌리티 솔루션 제공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이후, 앱티브와 합작회사 설립 등 외부 협력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애플카' 생산 협력 논의가 구체화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의 '용병술'도 정 회장이 주도한 결과다. 정 회장이 그룹의 '순혈주의' 전통을 깨고 외부 인재를 공격적으로 영입하며 변화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현대차의 디자인담당 이상엽 전무가 거론된다. 이 전무는 2016년 현대차가 외부 인재 영입에 상당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때 정 회장이 직접 영입을 추진한 인물이다.
또한 정 회장은 BMW에서 30년간 근무한 알버트 비어만 사장에게 현대차·기아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겼다. 기술 분야에서 특히 보수적인 현대차그룹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 강화를 위해선 미국 항공우주국 출신 신재원 부사장을 영입한 데 이어, 작년 하반기 임원인사에서 그를 사장으로 승진 임명했다.
현대차그룹이 서울 삼성동에 짓고 있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설계 변경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실용성을 중시하는 정 회장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GBC를 당초 105층 1개 동에서 50층 3개 동 등으로 변경하는 안을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GBC 설계 변경을 통해 최대 2조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게다가 50층 3개 건물을 지으면 150층의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앞서 정몽구 명예회장은 GBC 건설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는 2016년 GBC 공사 현장을 찾아 "GBC는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100년의 상징이자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간의 행보를 볼 때 실리파인 정 회장은 그룹의 위상 과시보다는 공사비 절감과 공간 효율성 강화가 우선일 것"이라며 "그는 앞으로도 선대와 다르게 실리·개방을 앞세워 선도 기술 확보를 위한 M&A 등을 적극 추진하며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변신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