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경 칼럼] 최악으로 치닫는 '부의 양극화'...주택정책은 이념의 도구가 아니다
- 빛보다 빠른 속도로 급등하는 집값...수도권 웬만한 아파트 15억 넘어 - 정부, 뒤늦게 주택공급 확대 나서 다행...주택문제 가볍게 보는 정치권 인식은 문제
집값이 시도 때도 없이 급등하면서 전국 상위 20% 주택가격(전국 5분위)이 평균 10억2761만원으로 10억원을 넘어섰다. KB국민은행이 이 통계를 시작한 200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10억원을 넘어서는 과정을 보면 그 빠른 속도에 말문이 막힌다. 전국 5분위 주택값은 2017년 2월 평균 6억원을 넘긴 뒤 2018년 9월 7억원을 돌파하며 1년 7개월 동안 1억원이 올랐다.
이후 1년 4개월 만인 작년 1월 8억원을 넘긴 뒤 다시 7개월 만인 작년 8월 9억원을 넘어섰고, 그로부터 5개월 뒤인 지난달 10억원을 돌파했다. '1억원 돌파'에 걸리는 기간이 17개월에서 5개월로 빛보다 빠른 속도로 급등했다.
1분위의 저가 주택가격 상승은 보잘 것 없다. 지난달 전국 주택 1분위 평균가격은 1억1866만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하면 5.8%(650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상승폭은 2.3%(265만원)로 더 줄어든다. 최근 2년 동안 5분위 주택값이 3억 가까이 오르는 사이 1분위 주택값은 300만원도 채 오르지 않았다.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진 것이다.
5분위 배율은 주택 가격 상위 20% 평균(5분위 가격)을 하위 20% 평균(1분위 가격)으로 나눈 값으로, 배율이 높을수록 가격 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이라는 자산을 놓고 부의 양극화가 급격히 악화하는 사이 3~4년 뒤 신규 입주할 주택의 양을 가늠할 수 있는 주택인허가는 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 건설실적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택 인허가 건수는 총 45만7514건으로, 2013년 이후 가장 적었다. 심지어 직전 5년간 평균치보다 30%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말 그대로 공급절벽이다.
그러는 사이 서울 수도권의 웬만한 크기의 아파트값은 15억원대로 껑충 뛰어 어떻게 되돌이킬 수조차 없이 됐다.
24번에 걸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무주택자와 서민, 저소득층, 젊은이를 앞세운 겉치장이었다. 부동산 자산가들의 배만 불렸다. 그것도 24번이나 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저소득층과 무주택자, 내집마련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의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국민 자산에서 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약 90%에 이른다. 국민의 대부분이 집이 전재산인 셈이다. 그런데 집문제를 놓고, 인증도 안된 자아실현과 이념실천에 매몰돼 전례가 없고, 앞으로도 있을 거 같지 않은 심각한 부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1990년대 말 이후 세계화(Globalization)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부의 양극화가 진행됐다.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부의 양극화가 이처럼 극심해진 것은 유례가 없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특단의 주택공급 대책을 오늘(4일) 내놓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문 정부의 25번째 주택 관련 대책이다. 아마도 주택공급 부족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 불안을 일거에 해소할 것”(문 대통령)이나 “5년 내 공공분양주택을 통해 반값아파트 30만 가구를 건설하겠다”(서울시자 여당후보) 등의 발언을 보면 아직도 주택문제를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주택문제는 일거에 해소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대폭 풀지 않으면 그만 한 부지를 찾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앙정부가 결정할 정책을 마치 임기 1년짜리 시장이 할 수 있는 것처럼 표심을 유혹하는 것은 집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충돌, 혼란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당과 정치권이 이러한 인식에 갇혀 있는 한 이번 25번째 대책이 마지막이란 보장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