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전격합의] 갈등은 풀었지만 남은 과제도 적지 않아…LG-SK 앞은 '산넘어 산'
- 양사 2조원 규모로 합의 완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금액을 지급하겠다는 사안은 정해지지 않아 협의 필요. - 중국 업체들의 무서운 약진. 전고체 배터리 특허 공유 공동 개발해야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관계자는 "업체 주도로는 쉽지 않고, 그런 사례도 없다" - 폭스바겐 등은 이미 배터리 전환으로 물건너 감. 엔지니어 유출 등에 대한 대책 필요함 제시 등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과 SK이노베이션(이하 SK이노)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을 하루 앞두고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다.
다만 구체적인 합의금 조달 방법을 강구해야 하고, 분쟁이 지속되는 동안 꾸준히 성장동력을 키워 온 중국 배터리 업체들을 견제해야 하는 등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이제 막 합의를 마친 단계이기 때문에 SK이노의 재원 확보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합의금을 분할로 납부하는 방식이고, 자회사 지분 매각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재무상으로 큰 무리는 없을 수 있다"고 전했다.
13일 녹색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배터리업계는 LG엔솔과 SK이노간 합의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몇가지 우려를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양사는 지난 11일 SK이노가 LG엔솔에게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관련한 국내외 쟁송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합의금 중 현금 1조원은 올해와 내년에 걸쳐 5000억원씩 분할 지급할 예정이다. 로열티 1조원은 오는 2023년부터 매년 SK이노 배터리 매출의 1~1.75%가량을 지급해 누적 1조원을 채우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영업손실만 2.5조인 SK이노…합의금 조달 부담 우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SK이노가 2조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조달하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SK이노의 지난해 연결기준 실적은 매출 34조1645억원, 영업손실 2조5688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정유 사업이 2조2228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이 주요했으나 배터리 사업 역시 4265억원의 영업손실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적자에 빠진 상황에서도 미국, 헝가리 배터리 공장 등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 재무구조도 악화됐다. 지난해 4분기 기준 SK이노의 부채비율은 149%로, 전년 대비 32%p나 급증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SK이노의 추정 순차입금 12조원, 부채비율 160%의 재무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추가로 발생할 설비투자비용과 정유·화학 사업 매각 시 과거 대비 이익 체력이 떨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므로 배터리 사업의 가파른 이익개선 여부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반면 SK이노가 합의금 조달에 별다른 무리가 없으리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SK이노가 올해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상장을 준비하고 있고 윤활기유 사업 지분 매각, 페루 광구 매각 등으로 충분한 현금성 자산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금 지급 규모는 1조원인데 SKIET 지분 판매로 1~1조3000억원, 페루 광구 매각으로 1조2000억원의 현금 유입이 예상된다"며 "이에 재무적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합의금을 분할로 납부하는 방식이라 당장의 큰 재무적 부담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총 합의금 규모 역시 SK이노는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 유입으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쟁 벌이는 사이 중국 업체 약진…공동대응 가능할까
LG엔솔과 SK이노가 지난 2019년 4월부터 최근까지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는 사이 CATL, BYD 등 중국 업체들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CATL의 전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31.2%로 전년 동기(22.8%) 대비 8.4%p 상승했다. 2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18.5%, 5위인 삼성SDI는 4.8%, 7위 SK이노베이션은 3.9%로 CATL과 큰 격차를 보일 뿐만 아니라, 전년에 비해 점유율이 일제히 하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SNE리서치는 "한국 배터리업체의 약진이 올해 들어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약간 주춤하는 모양새"라며 "CATL과 BYD를 필두로 중국 업체들이 유럽 등 비중국 지역에도 공급망을 확대하며 한국 배터리업체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CATL이 그간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저가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CATL의 배터리 제품 가격은 국내 배터리 업체 제품에 비해 10~20% 정도 저렴한 수준이다. 여기에 CATL은 지난해 수명이 200만km인 배터리를 개발하고 니켈, 코발트와 같은 고가의 금속을 배제한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돌입하는 등 연구개발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는 중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LG엔솔과 SK이노,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3사가 기술력 강화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LG엔솔과 SK이노가 해묵은 갈등을 털어낸 지금, 각 사가 협업을 통해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개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비용을 투자해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어렵고 그런 사례도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다만 정부 주도로 이와 관련한 국책 사업이 진행되면 특허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한데, 정부 역시 배터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만큼 가능성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등 돌린 고객사…사업 다각화 전략 고심 필요해
LG엔솔과 SK이노간의 분쟁은 이들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는 완성차 업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월 미 ITC가 SK이노에 향후 10년간 미국 내 배터리 수입 금지 명령을 내렸을 당시 SK이노의 고객사인 포드와 폭스바겐이 공급망 확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폭스바겐은 기존 LG엔솔과 SK이노에게서 공급받던 파우치형 배터리를 줄이고 오는 2030년까지 각형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의 비중을 80%까지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LG엔솔과 SK이노의 지지부진한 분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폭스바겐이 국내 배터리업체로부터 등을 돌렸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특히 SK이노의 경우 현재 파우치형 배터리만을 생산하고 있어 위험성이 더 크다는 평가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SK이노의 경우 오로지 파우치형 배터리에만 집중된 사업구조, 경쟁사대비 공격적인 감가상각, ESS 사업 부재 등이 단점으로 꼽힌다"며 "향후 배터리 사업 가치를 부각하기 위해서는 파우치형 배터리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기존 사업의 실적 회복 등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