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이건희, 13년만에 사회공헌 약속 지키는 사연...이재용, 수감 100일 '특사 관심'

-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 양심선언으로 촉발된 '삼성 특검' 파장 - 이건희 "유익한 일에 쓰겠다" 사회공헌 약속 13년 만에 유족에 의해 실현 - 이재용, 27일부로 수감생활 100일째...특사 등에 긍정적 영향

2021-04-26     박근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가족들이 오는 30일 상속세 신고 및 납부 기한을 맞이한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남긴 유산 중 수조원 규모의 사회환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사회환원은 이미 13년 전 ‘삼성 특검’으로 촉발된 약속이 별세 이후 유족에 의해 이행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27일 수감생활 100일째를 맞이해 이번 주는 삼성가(家)에 눈길이 쏠린다.

삼성가로서는 기억하지 싫은 ‘삼성 특검’의 소환이지만 사회환원을 통해 털고 가는 것이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그리고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 그날

'삼성 특검' 후폭풍...이건희-이재용 퇴진 등 삼성 경영쇄신안 발표

2008년 4월 22일.

이건희 회장은 삼성 경영쇄신안을 내놓고 삼성과 관련된 대표이사 회장, 등기이사 등 모든 직책을 내놓고 전격 퇴진했다. 당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삼성그룹의 대표 역할을 맡게 됐다.

이는 삼성의 전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 관련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양심고백을 하면서 촉발된 ‘삼성 특검’의 후폭풍이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계좌에 50억원의 삼성 비자금이 있다고 양심 고백을 했다. 2007년 이 회장의 비자금·차명계좌·경영권 불법 승계 정황이 드러나면서 ‘삼성 비자금 특검팀’이 만들어졌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가 적발되고 천억 원대의 세금포탈 혐의가 드러났다.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이건희 회장이 증여세를 피하면서 삼성 그룹의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물려주려 했다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 이 부회장도 당시 최고고객책임자(CCO) 직책에서 물러났다. 다만 삼성의 다른 해외 사업장에서 활동했다.

당시 이학수 사장이 발표한 삼성 경영 쇄신안에는 홍라희 관장의 리움미술관 관장과 문화재단 이사 사임, 전략기획실 해체, 이학수-김인주 사장 퇴진,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는 실명으로 전환, 금융사업 투명화 및 은행 진출 불가 선언 등이 포함됐다.

특히 쇄신안을 통해 지주회사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당장 추진하지 않으며, 순환출자는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45년 내에 매각 검토 등도 발표됐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비리 혐의와 삼성 내의 비화 등을 담은 <삼성을 생각한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8년 4월, 이 회장은 임원들과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삼성은 삼성공화국, 황제경영 등 비판을 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경영쇄신 내용 중 하나로 “실명 전환한 차명 재산 중에서 누락된 세금 등을 납부하고 남은 돈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했다. ‘유익한 일’은 사재 출연 형식의 사회환원 약속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삼성은 이 회장의 사과문 뒤에 덧붙여 “남은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는 않겠다”며 “구체적인 용도에 대해서는 회장의 취지에 맞도록 시간을 갖고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 그후

이건희 회장 조세포탈 혐의 유죄 판결 후 특사...심근경색 입원 후 사회공헌 약속 미뤄져

2008년 7월, 이건희 회장은 양도소득세 456억 원에 대한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1천100억원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이후 2009년 8월 서울고등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회장은 구속되지는 않았다. 이어 같은 해 12월, 특별 단독 사면됐다.

특검은 불법 증여와 탈세만 기소했다. 비자금 조성과 불법 정치자금 제공 등은 무혐의 처리했다. 이는 차명계좌가 비자금이 아니라 이병철 선대회장에게 차명인 상태로 상속받았다는 삼성의 주장이 받아들여던 것. 결국, 삼성은 차명계좌와 관련 양도소득세 포탈액 1128억원에 관해서만 처벌을 받았다. 특검이 은닉재산과 경영권 승계에 면죄부만 줬다고 비판도 나오는 이유다.

이 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차명계좌로 있던 삼성생명 지분(16.22%· 2007년 기준 약 2조3119억원)을 명의신탁해지를 활용해 모두 실명 전환했다. 그 결과, 2007년 4.54%였던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2008년 말 20.76%로 대폭 증가했다. 삼성특검으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인 삼성생명의 지분을 크게 늘린 셈이다.

김경률 회계사는 당시 “2008년 특검이 차명계좌 조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정확한 규모와 조성 과정을 밝히지 못한 채 면죄부만 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시 이건희 회장의 사회화원 약속은 지금껏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삼성은 그간 현금 또는 주식 기부, 재단 설립 등 여러 방안을 놓고 검토만 해왔다.

무엇보다 이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중단됐다.

이어 2020년 10월, 25일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이 회장의 실명 전환된 재산은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삼성 계열사 주식 2조1천억원어치 중 세금 등을 내고 남은 금액이 1조원 남짓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재 출연 규모가 1조원대일 것이란 관측은 여기에 있다.

◆ 그리고,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 27일부로 수감 100일째...사회공헌 약속 이행 등 사면에 영향 '관심 집중'

이번 주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들은 상속세 신고·납부 방안과 함께 수조원대의 사회 환원 계획을 발표할 전망이다.

이 회장이 생전에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약속을 13년 만에 이행하게 된다. 유족이 고인의 생전 약속을 지키는 셈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주 27일부로 수감생활 100일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사회공헌 발표는 만감이 교차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18일, 국정농단 사태 의혹이 사법적 판단을 받아 법정에서 구속수감됐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5조원을 기부하기로 한 상황에서 삼성가의 수조원대 사회공헌 발표는 재계에 ‘노블리스 오블리주(지위에 걸맞는 책임)’을 확산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공헌 발표에는 이 회장의 실명전환 차명재산 1조원 이외에도 감정가액 1조원 이상으로 알려진 미술품·문화재 등이 포함된다.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은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등과 기증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또 사회공헌에 코로나19 계기로 감염병 예방 전문병원 운영 재단 설립 등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편, 홍라희 여사를 중심으로 한 유가족들은 최근 이 회장의 삼성전자 주식을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물려줘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교통 정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구본무 회장 별세 이후 유족들이 구광모 LG 회장에게 ㈜LG 지분 78%를 몰아준 형식과 유사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상속받을 경우 주식가치로만 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이건희 회장이 기록한 역대 최고주식평가액 22조 2980억원을 뛰어넘는 수준이고, 세계 최대 갑부의 상징 ‘아랍 왕족 셰이크 만수르’의 재산 34조원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물려받게 되면 주식재산 가치만 해도 약 19조4000억원에 달한다”며 “이 부회장이 기존 보유하던 9조원 상당의 주식재산까지 더해지면 총 28조 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국내 첫 30조 육박 주식갑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주식(4.18%)과 삼성전자 우선주(0.08%),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8%), 삼성SDS(0.01%) 지분을 갖고 있다. 법적 상속 지분은 이 회장의 아내인 홍라희 여사가 9분의 3, 이재용 부회장·이부진 사장·이서현 이사장 등 세 자녀가 각각 9분의 2씩이다.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주식 지분만 11조366억원에 달하고 미술품·부동산·현금 등을 포함하면 총 납부세액이 12조~13조원에 달한다.

유족들은 이달 말까지 전체 상속세의 6분의 1인 약 1조5000억원을 우선 납부하고, 나머지는 앞으로 5년 동안 연부연납 방식으로 나눠낼 예정이다. 상속세 중 부족한 재원은 향후 5년간 주식담보대출, 삼성 주식 일부 처분 등을 통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삼성가의 사회공헌 계획 발표가 향후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리고 재계의 기부 확산에 촉매제가 될 것인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