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한국기업 대응은③반도체·디스플레이] 전례 없는 호황에 온실가스도 ↑…전력 효율화·친환경 제품 등 숙제
-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코로나19 여파로 생산량 증대하며 온실가스 배출량도 늘어날 전망 - 업계는 공정 과정에서 사용되는 전력 효율화, 온실가스 분해 설비 도입 등 노력…지난달 협업체도 마련 - 기술 고도화 될수록 늘어나는 전력 소모량은 문제…"효율화와 친환경 제품 생산 등 다방면에서 노력할 것"
미국이 40개국 정상을 초청해 22일(현지시간) 기후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기후변화라는 세계적 위기에 전세계가 온실가스 배출을 낮추는데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존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고 탄소 가격제와 배출권 거래제 확대 등의 정책들이 제시됐다.
한국은 올해 들어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과제라 할 수 있는 탄소중립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12개 업종별로 탄소중립위원회를 가동하는가 하면 기후변화대응의 기본법이 될 탄소중립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코 앞으로 다가온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난제에 국내 기업들은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주도 하에 세계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 문제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본, EU 등이 일제히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한 가운데 한국도 이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에너지전환포럼에 따르면 2015~2018년 기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은 각각 4.5%, 3.6%로 6,7위를 기록하고 있다. 1위 철강(32.3%), 2위 석유화학(17.2%)과는 격차가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적잖은 비중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은 대규모 양산 설비를 가동하는 첨단 산업으로 막대한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 또한 초미세 공정을 위해 대량의 화학물질을 사용해 공정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 또한 많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두 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대체로 증가해왔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목된다.
반도체 공정 가스원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6년 258만톤에서 2017년 298만톤으로, 2018년에는 427만톤으로 증가했다. 디스플레이 역시 같은 기간 367만톤, 426만톤, 468만톤으로 꾸준히 늘었다.
업계 호황 맞을수록 온실가스 배출량도↑…업계 '고민거리'
2018년 반도체 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유난히 두드러진 까닭은 슈퍼사이클의 도래로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품에 대한 수요가 더 없이 증가한 지금, 이전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이 대폭 증가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실제로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해 큰 폭으로 뛰었다.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10대 기업에 속하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1361만톤의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2019년(1114만톤)에 비해 약 22% 증가했다. 2016년 배출량이 689만톤였던 것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상승한 수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469만톤으로 전년(378만톤) 대비 24% 늘어났다. 상승폭이 삼성전자만큼 크지는 않지만, SK하이닉스도 지난 2016년 배출량(280만톤)과 비교해 60%가 넘는 증가세를 보였다.
이들 기업은 미래 반도체 시장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설비 증설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12만8900㎡ 면적의 반도체 공장인 평택 2라인 가동에 들어갔으며, 약 19조원 규모의 투자로 오스틴 파운드리 공정의 설비를 증설하는 방안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올해 6월부터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5만 7000㎡ 면적의 공장에서 차세대 D램의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 파운드리 업계 관계자는 "폭증하는 제품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파운드리 업계가 설비나 기술 개발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증가하는 온실가스 문제를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반도체보다는 한결 상황이 나은 편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연이어 상승하다가 2019년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2018년 519만톤에서 2019년 479만톤으로 8% 가량 줄었다.
LG디스플레는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588만톤으로 전년(660만톤) 대비 12% 정도 줄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2019년 디스플레이 업계가 불황에 빠져 생산량이 감소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중국 LCD 업체들의 약진으로 패널 생산량이 줄어들고 시장 점유율이 감소하는 등의 부진을 겪은 바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가 LCD에서 OLED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LCD 공정에서는 육불화황(SF6),을 삼불화질소(NF3)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OLED 공정의 경우 유기물질을 발광 소재로 사용하는 제품 특성 때문에 삼불화질소 적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설비·기술개발 면에서 온실가스 저감 노력…협업체 구성
온실가스는 제품 생산에 필요한 전기 사용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과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직접 배출', 생산공정에서 이용되는 화학물질이 공기 중으로 배출되면서 발생하는 공정 배출로 구분된다.
이 중 직접 배출 비중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서 그리 크지 않아 저감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간접 배출과 공정 배출을 중점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을 펼쳐왔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사업장 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매월 분석하고 반도체 공정에 분해율 90% 이상의 온실가스 분해설비 도입하는 등의 시스템을 마련했다. 셀 설계 최적화와 공정 혁신을 통해 7나노 대비 전력효율이 20% 향상된 제품 생산이 가능한 5나노 EUV 공정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와 더불어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유럽과 미국, 중국 내 모든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을 완료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8년 친환경 반도체 생산 공정 실현 방안을 담은 'ECO Vision 2022'를 수립하고 실천해왔다. 해당 비전을 통해 △에너지 시스템 최적화를 통한 사용량 및 비용 절감 △기술 개발과 장비 개선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대체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공정 과정에 인공지능 분석 기술을 도입해 장치를 가동하는 데 소모되는 전력량을 크게 절감하고, 과불화탄소(PFCs)·아산화질소(N₂O) 등 온실가스의 원인이 되는 공정가스를 3단계에 걸쳐 분해하는 스크러버 장비를 도입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폴더블 OLED 패널 신규 공정에서 배기 분해시설을 기존 대비 확대하여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성분 배출을 대폭 감소시키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LG디스플레이는 내부에 환경 전담 조직을 구성해 저탄소 생산 기술 개발, 친환경 제품 개발, 에너지 효율 극대화 등의 정책을 집중 추진하고 있다. 또한 공정 가스를 지구온난화지수가 낮은 가스로 대체하고 대기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을 90% 이상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감축 설비를 사업장에 설치했다.
협력 차원에서의 대책도 마련 중이다. 지난달 산업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4개사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탄소중립위원회’를 결성하고 출범식을 가졌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탄소중립위원회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2050 탄소중립 논의를 위해 꾸려진 민관 협의체다. 이들 기업은 출범식에서 온실가스 배출 제어기술과 친환경 공정가스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세계반도체협의회 및 세계디스플레이 생산국 협의체와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등의 과제를 담은 ‘2050 반도체·디스플레이 탄소중립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어 개최된 간담회에서는 탄소중립 이행 과제, 탄소중립 기술로드맵, 정책건의 및 제안 등이 논의됐다.
이상준 에너지경제연구원 팀장은 “반도체·디스플레이산업은 직접 배출보다는 전력 사용에 따른 간접배출이 70% 이상으로 조사된다”면서 “이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사용(RE100), 전기차 전환(EV100), 에너지효율 혁신(EP100) 등 업계 주도의 3대 자발적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로드맵 관련해서는 강상우 표준과학연구원 소장이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공정가스 배출제어기술, 친환경 공정가스 대체 전환 기술, 온실효과 측정 검증·인증 기술, 저전력 반도체 공정 기술 등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외에도 간담회에서는 탄소중립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탄소중립 R&D 기술개발 지원,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 확대 등의 다양한 건의사항이 논의됐다.
다방면 노력에도 기술 고도화될수록 전력 사용량은 늘어나…향후 과제는
이처럼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으나, 현실적인 부문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남상욱 산업연구원(KIET) 부연구위원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현황과 중장기 과제' 보고서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에서 최근 기술발전의 핵심은 적층 기술과 초미세 공정"이라며 "식각의 정밀도가 상승하고 적층을 통해 공정을 반복하는 형태로 발전하다 보니 반도체 한 개당 사용하는 전력 사용량은 점차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OLED 패널 생산을 위한 전력 사용량 역시 LCD와 비교해 2.5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품이 고도화될수록 향후 간접 배출이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상욱 부연구위원은 이에 지속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장기 과제로 크게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기술개발(R&D)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온실가스 저감장치의 단점을 개선하거나 온실가스를 사용하지 않는 공정을 개발하는 것이 주 목표다.
둘째는 개선된 저감장치나 공정 기술의 개발이 실제 생산에 도입되기 위한 충분한 인센티브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에서는 제조기업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저감장치 개발 및 실제 설치 시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온실가스에만 국한되지 않는 산업별 특성을 감안한 통합적인 환경오염 배출 규제 도입이다. 현존하는 최대 효율의 스크러버는 NOx, 수질 오염, 전기사용량 확대 등 환경에 부정적 요소가 있어 이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관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남상욱 부연구위원은 반도체·디스플레이는 핵심 전자부품으로 전자제품 효율화의 중심에 있다"며 "온실가스 저배출 사회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공정 배출 감축을 위한 노력과 함께 지속적인 제품 혁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 역시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제품 당 소모되는 전력 사용량이 늘어날 수는 있으나, 웨이퍼 당 제품 생산량이 500개에서 600개로 늘어나는 등의 에너지 효율화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공정과 제품 부문에서 함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