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이재용·정의선·최태원·구광모 4인 총수 모임 1년 재조명…청와대 회동 '이재용 사면론' 급부상
- 이재용-정의선, 지난해 5월 첫 만남 시작으로 최태원-구광모 등 4대 그룹 총수 모임으로 발전 - 12월 모임 이후 '이재용 구속'으로 중단...오는 2일 청와대 4대 그룹 총수 회동 '이재용 사면' 관심
지난해 5월 본격 시작된 4대 그룹 총수 모임이 1년을 맞이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6월 2일 이들 총수들과 회동을 하면서 '이재용 사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초 4대 그룹 총수 모임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주도해 각각 단독 모임으로 시작했다. 이후 9월부터는 4인 총수 모임으로 정례화됐다.
특히 오랜 시간 미묘한 경쟁 구도를 보이던 삼성과 현대차는 1년 전 첫 만남의 시작이었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졌다. 친환경 모빌리티가 미래 핵심 사업으로 떠오른 가운데 삼성과 현대차가 '전기차 사업' 강화에 의기 투합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5월 1차로 첫 단독 회동을 가진 데 이어 두 달 뒤에 2차 회동을 이어갔다. 각 회동에서 두 총수는 전기차를 비롯한 미래 모빌리티 사업을 두고 혁신 기술과 협업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양사 간 협업은 물꼬를 트는 듯 보였다. 삼성디스플레이가 10여년 만에 현대차와 제품 공급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정부 주도의 협의체에서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전략을 함께 구상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원통형 전기차 배터리에서 협력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다만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간의 합작사 설립이 활발한 시점에서 삼성-현대차의 협력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이 리더십 부재에 빠졌다는 점은 한계로 지목된다.
◆ 그날
이재용-정의선, 긴장 관계 풀고 '이례적 만남'…차세대 전기차 사업서 뜻 맞았다
2020년 5월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첫 단독 회동을 가졌다.
재계 서열 1·2위인 두 그룹 총수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화제였으나,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그간 자동차 사업에서 서로를 '견제'해 온 관계라는 점에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후반 삼성이 '르노삼성자동차'를 통해 완성차 사업에 진출한 이래로 양 사는 어떠한 협업도 맺어오지 않았다. 일례로 현대차는 삼성이 2016년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했을 때 자사의 일부 신차에 쓰이던 하만 카오디오를 다른 브랜드로 교체한 적이 있으며, 전기차 배터리 역시 삼성SDI가 아닌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대부분의 물량을 공급 받아왔다.
이처럼 미묘한 경쟁 구도를 이어 온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차세대 전기차 사업의 핵심인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비로소 협력의 가능성을 열었다. 당시 이 부회장, 정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들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일본연구소가 공동연구하고 있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 현황과 협력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전해질(리튬이온이 양극, 음극 사이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을 기존 액체에서 고체로 바꾼 차세대 배터리다. 고체 전해질은 액체에 비해 팽창이나 누액의 가능성이 훨씬 적어 전기차의 안정성을 높여주며, 별도의 분리막이 필요하지 않아 공간 효율성이 뛰어나다.
다만 전고체 배터리는 소재 특성상 덴드라이트 현상(리튬이 음극 표면에 쌓여 성능을 저하시키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삼성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고체 배터리 음극에 5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은-탄소 나노입자 복합층을 적용한 ‘석출형 리튬음극 기술’을 2020년 3월 세계 최초로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시기 현대차는 오는 2025년까지 61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톱3’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세운 상태였다. 향후 출시할 44종의 친환경 차 중 23종을 전기차 전용 모델로 채우는 것은 물론,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탑재한 첫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 부회장이 삼성의 전고체 배터리에 높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당시 전고체 배터리 생산을 위한 회사 설립을 구상 중이기도 했다.
삼성 역시 현대차와의 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많았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위해 맞손을 잡은 토요타와 파나소닉을 현대차와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고, 삼성SDI는 공급망을 현대차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 그후
정의선, 최태원-구광모 회장과 연쇄 회동...4대 그룹 총수 모임으로 정례화
이 부회장과 정 회장의 회동은 단순히 일차적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1차 회동 두 달여만인 2020년 7월 21일, 이 부회장은 1차 회동에 대한 답방 차원으로 경기도 화성 소재의 현대차 남양기술연구소에서 다시 한 번 정 부회장과 만남을 가졌다.
이날 삼성 측에서는 이 부회장과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전영현 삼성SDI 사장, 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 LSI 사업부 차장,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등이 동행했으며,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서보신 현대·기아차 상품담당 사장, 박동일 연구개발기획조정담당 부사장 등이 이들을 맞이했다.
두 총수를 비롯한 경영진들은 남양연구소의 연구개발 현장을 함께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R&D·디자인 등 연구 인력만 1만4000여명에 달해 현대차의 핵심 시설이라 불리는 남양연구소는 종합주행시험장, 실차 풍동시험장, 디자인연구소,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이들은 자율주행차와 수소·전기차 등을 시승하고 차세대 친환경차와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로보틱스 등 현대차그룹의 미래 신성장 영역 제품과 기술에 대한 논의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한 대책이 오갔는 지에 대해서도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테슬라가 17.7%로 1위를, 현대와 기아를 합친 현대차그룹은 7.2%로 2위를 기록했다.
여기에 테슬라가 원가를 크게 절감한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로드러너 프로젝트'를 시행하며 전기차 시장에서의 주도권 확보에 나선 만큼, 업계에서는 삼성-현대차가 힘을 합쳐 'K-배터리' 사업 강화에 나서주기를 기대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이후 두 총수의 회동은 차츰 뚜렷한 성과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월 E-GMP를 기반으로 한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에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것이다.
아이오닉5는 사이드미러에서 거울을 없애고 카메라와 디스플레이를 장착하는 옵션을 추가했다. 각각 사이드미러와 차량 내부에 장착된 카메라, 디스플레이를 통해 차량 뒤쪽과 주변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해당 시스템에 자사 제품을 공급한다.
비록 업계가 기대하던 배터리 관련 협력은 아니었으나, 해당 계약이 현대차와 삼성이 2011년 맺은 LCD 공급 계약 이후 10여년 만에 맺는 계약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한 의의가 있었다.
지난 3월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족한 ‘미래차·반도체 연대 협력 협의체’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협의체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비롯해 현대모비스, DB하이텍, 텔레칩스, 넥스트칩, 자동차산업협회, 반도체산업협회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기업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심해지던 상황에 맞춰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정 관련 대책을 모색하고, 미래차·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한 중장기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지난달 14일에는 삼성SDI와 현대차그룹 간의 협력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현대차가 자사의 신형 하이브리드 전기차(HEV)에 삼성SDI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할 것이라는 것이 주 내용이다.
업계에 따르면 기존 전기차 사업에서 주로 파우치형과 각형을 채택해 온 현대차는 차세대 HEV에 원통형 배터리를 사용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삼성SDI와 손을 잡는다. 양사는 관련 사업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으나, 업계는 그간 지속돼 온 협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고 보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6월과 7월에는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사업장에서 만났다. 이들 기업 총수는 전기차와 배터리를 매개로 공개적인 만남을 시작했던 것이다.
4대 그룹 총수는 9월부터는 아예 4인 모임을 정례화했다. 이들 총수는 9월, 11월, 12월 등 총 3차례 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외부에 알려진 모임 외에도 비공개 만남을 갖고 재계 현안을 나누고 있다.
지난해 12월 모임의 경우 주요 사업 관련 얘기는 물론 최태원 회장이 차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추대되는 것에 대해서도 대화가 오갔다.
재계 관계자는 "이들 젊은 총수들은 '형 동생' 부르는 사이로 친분이 두텁다"며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이 치열한 '배터리 소송전'을 벌었지만 총수 사이에서 원만한 해결을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전했다.
그러나 4대 그룹 총수 모임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수감으로 이후 열리지 못하게 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수감됐다.
◆ 그리고, 앞으로
'이재용 부재' 리스크…2일 청와대 4대 그룹 총수 회동 '이재용 사면론' 본격화 전망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이 앞으로도 추진력을 받을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총수 부재'라는 악재가 닥친 삼성은 반도체, 전기차를 비롯한 미래 혁신 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내리거나 협업 관계를 형성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 단체는 "과감한 사업적 판단을 위해선 기업 총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이재용 사면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전기차 시장에서 완성차 업체들과 배터리 업체들과의 협업이 보다 중요해지는 가운데, 삼성SDI는 '독자노선'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 또한 눈여겨 볼만 하다.
폭스바겐, 테슬라, 포드, 도요타 등 주요 완성차들이 잇따라 배터리를 독자적으로 개발 및 생산하는 '배터리 내재화' 전략을 추구하는 흐름은 배터리 업체들에게는 고객사를 잃는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으나, 동시에 시장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안전성이 가장 중요한 전기차 배터리를 완성차 업체들이 단기간 내에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도요타가 파나소닉과 손을 잡은 것처럼 기존 배터리업체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관계를 다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인 '얼티엄셀즈'를 설립했으며 현대모비스와 함께 인도네시아에 합작 법인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 또한 포드와 손을 잡고 '블루오벌에스케이'를 설립해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반면 삼성SDI는 BMW, 리비안 등에 배터리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유럽이나 미국 배터리 공장 증설을 검토하고 있을 뿐 합작사 설립에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배터리 독자 생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입장에서 최근 "자사 주도로 배터리 내재화에 나서고 있다"고 방향을 틀었다.
전기차 시장이 협업과 독자노선을 모두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과 현대차의 관계가 더 발전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이 부회장의 복귀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4대 총수가 돌아가면서 회동을 주도하는데 다음 순번이 이 부회장 차례였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4대 그룹 총수 회동을 하는데 이 부회장의 빈 자리가 커 보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오는 6월 2일, 청와대에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 회장), 구광모 LG 회장과 만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대신 김기남 대표이사 부회장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가 4대 그룹 총수만 별도로 회동을 갖는 것은 문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다. 표면적으로는 한미정상회담에서 44조원 투자에 대한 감사의 자리다.
하지만 청와대발 4대 그룹 총수 회동을 기점으로 '이재용 사면론'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최 회장이 재계 수장으로서 이 부회장 사면 이야기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 그간 '이재용 사면론'에 거부감을 나타내던 청와대와 민주당도 이제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정치권에서는 '8.15 광복절 특사'가 거론되기도 한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4대 그룹 총수들의 모임이 1년 만에 다시 재조명되는 것은 이 부회장 부재에 국민적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이 부회장이 석방된다면 4인 총수 모임 부터 챙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