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우 칼럼] ‘반도체 전쟁’과 이재용 사면론

- 재계, 여권에 이재용 가석방 대신 사면 요구...정치적 논리 대신 국익 차원 결단 중요 ...가석방은 형을 면제받지 않은 채 구금 상태에서만 풀려나는 것, 해외 출장 등 어려워

2021-06-16     박근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전쟁’ 중인 가운데 우리나라에도 불똥이 튀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14일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재차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이 사면이 아닌 가석방으로 태세 전환을 하자 재계 입장은 '사면'이라고 명확한 것이다.

손 회장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이 부회장의 복귀를 통해 우리나라도 투자 등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 회장은 경총 회의에서 "지난 4월 이후 경제부총리를 시작으로 청와대와 국무총리에게 이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했다"면서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시기에 이재용 부회장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하루빨리 만들어 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정부·여당에서도 사면을) 충분히 검토하고 있다고 본다"면서 "대만의 TSMC, 미국 마이크론 등이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결정이 늦어지면 우리도 순식간에 2위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지난 4월 처음으로 ‘이재용 사면론’에 불을 지핀 바 있다. 경제 5단체장 명의로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공식 건의했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사면 건의와 관련해 현재까지 검토한 바 없고 현재로서는 검토할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4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어서 우리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더욱 높여나갈 필요성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 부회장의 사면론에 공감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청와대에서 가진 4대 그룹 대표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해 “고충을 이해한다”며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고 긍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손 회장이 재차 ‘이재용 사면론’을 요구한 것은 여권의 ‘가석방론’에 대응한 발언이라는 관측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7일 KBS '사사건건'에 출연해 이 부회장과 관련 "현재 구속된 사안은 형기의 반을 조금 넘겼다"며 "현행 형법상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문제와 (코로나19) 백신 문제에서 일을 시켜야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고민한다면 사면보다는 원래 있는 제도 자체로 누구한테나 국민한테 적용되는 제도 활용이 검토될 수 있지 않겠나"라며 가석방에 무게를 실었다.

이 부회장은 ‘8.15 광복절 특사’로 풀려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사면과 가석방은 경영활동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고유권한인 특별사면은 남은 형 집행이 즉시 면제된다. 즉각적인 경영복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가석방은 형을 면제받지 않은 채 구금 상태에서만 풀려나는 것이다. 임시 석방이라 형이 남아있고 일정한 조건이 붙는다. 특경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5년간 취업할 수 없으며 보호관찰을 받아야 한다. 해외 출국도 쉽지 않다. 반도체 경쟁에 대응해 해외출장 등이 잦은 이 부회장에게 오히려 족쇄인 셈이다.

여권이 가석방에 무게를 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사면은 ‘재벌 특혜’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지만 가석방은 그럴 염려가 적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고육지책이 ‘가석방’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은 국가간 자존심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 내에서 삼성전자 등 한국 업체의 반도체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경쟁자인 대만 TSMC는 미국에 이어 일본까지 반도체 투자를 검토하는 등 글로벌 시장 진출에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여권, 내년 대선 앞두고 '이재용 카드' 만지작...국민 여론 '사면 찬성 60% 넘어'

반면 삼성전자는 미국 투자조차 아직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주 정부와의 인센티브 협상이 진행 중인 영향도 있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부재 중인 상황이 투자 결정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 부회장을 대신해 청와대 오찬 회동에 참석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 같은 애로사항을 문 대통령에게 털어놓았다. 김 부회장은 "반도체는 대형 투자 결정이 필요한데, 총수가 있어야 의사결정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여권이 이재용 사면 또는 가석방 카드를 책상에 올려놓고 내년 5월 대통령 선거의 실익을 계산하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중요한 선거 때마다 여권에서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이나 유력인사 사면 가능성을 흘린 적이 많기 때문이다. 

4.7 재보궐 선거 패배 이후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한 입장 변화가 생긴 것은 우연일까. 선거 때마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을 흘리며 계산기를 두드렸던 여권이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 찬성 여론이 60%를 넘는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경제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 부회장의 사면은 그런 비판을 만회할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경제인의 사면은 철절하게 국익과 경제논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문 대통령 발언 대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국가간 경쟁이 치열하다. 이 부회장 부재가 장기화될 경우 삼성전자는 경쟁에서 밀리고 우리나라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코로나19 백신 등 문제도 큰 역할이 기대된다는 의견도 많다.

손경식 경총 회장이 가석방 보다 사면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반도체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글로벌 리더로서 이 부회장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와대와 여권도 국가 반도체 경쟁력 차원에서 이 부회장의 석방을 검토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논리를 배제한 이 부회장의 사면이 정정당당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