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란] 美 정보제공 D-11, 속타는 韓기업들..."최소 정보는 공개해야 할 것"
-美정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반도체 재고, 주문, 판매 등 공급망 정보 요구 -美 압박에 TSMC, 정보 제공 동의...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업체 부담 가중 -韓정부, 美 상무부에 민감한 기업 내부 정보 유출 우려 전달...관련 협의 진행중
미국의 반도체 기업 정보에 대한 설문제출 시한이 11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기업들이 일정부분 정보공개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당장 수출길이 막혀 생사의 기로에 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최소한이라도 정보를 공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주 타겟이 삼성전자라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미국의 결정이다. 최소한의 정보만을 공개했을 때 미국은 추가 자료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결국 기업들이 미국이 요구하는 정도에 맞춰 정보를 상당 부분 공개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글로벌 1위인 대만 TSMC가 최근 미 상무부 요청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 정보를 제출한다고 밝히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진 상황이다.
TSMC는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공급망에 속한 기업들에게 데이터 제출을 요청하는 요구에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TSMC가 미국에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를 제공할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고객의 기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등 고객과 주주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공개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따라 국내 기업들도 비밀유지 조항 등과 같은 계약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일정 부분 정보를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정보공개 요구가 반도체 공급의 병목현상 해결 외에 다른 목적도 숨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첫 번째는 정치적인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미국 정부에 복종하게 만들기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만 파운드리 기업 TSMC는 미국에 3~5나노미터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짓기 위해 정부의 보조금 및 세제헤택을 받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이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TSMC는 공장을 미국에 짓기 시작한 것. 하지만 아직 보조금 마련과 관련된 사안은 의회를 통과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대만이 미국의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으면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이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녹색경제신문에 "TSMC는 미국에 매달려야 하는 입장이다. 대만은 정치적인 부분까지 얽혀있기 때문에 미국이 정보를 재공하라고 하면 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메모리쪽은 삼성전자가 석권하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이번 정보요구의 주 타겟을 삼성전자라고 보고 있다.
김 교수는 "메모리 쪽은 삼성전자가 1위다. 그냥 파운드리인 TSMC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미국이 삼성전자만 정보를 공개하라고 할 수 없으니 모든 기업들에게 정보를 공개하라고 하고 실제로는 삼성전자의 정보를 파악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목적은 '미국이 전세계 반도체 산업을 컨트롤 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미국 정부는 (세계 기업들로부터) 받은 정보를 미국 기업에 몰래 제공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가격 면에 있어서 얼마나 남기는지 등과 같은 모든 정보를 보고 시장에 대응하기가 매우 수월해진다"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수 있다는 부분이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도 김 교수와 같은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이 위원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1981년에 전 세계 산업의 공급망에 대한 분석을 이론적으로 마쳤다. 이후 자체 보고서를 토대로 세계 기업들에게 공급망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에는 자동차 부품사와 관련해 30페이지 분량의 설문지를 요구한 적이 있다.
그는 "(2018년 자동차 부품사 설문지 관련)우리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설문지가) 상세하게 만들어져 있다"며 "이번에도 미국은 우리가 만들어내지도 못할 정도로 상세한 설문지를 채우라고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이 문제로 삼는 부분은 '공급망 공개'다. 그는 "미국은 조달부터 판매까지의 모든 공급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거래관계는 기업이 단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는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며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 슈퍼301조에 버금가는 요구다"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녹색경제신문에 "미국이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 부분(공급망 관련 설문조사)만 알면 전세계 반도체 산업을 컨트롤 할 수가 있다"며 "(미국이 제시한 설문지는)틀이 딱 잡혀있기 때문에 다 채워넣는 순간 모든 게 다 밝혀진다"며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