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디펜스 인사이트]김영후 방산학회 수석부회장 "무기 개발은 속도전...진화적 ROC 적극 도입해야"
한국방위산업학회(회장 채우석)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또한 방산학회가 발간하는 '한국방위산업학회지'가 지난달 등재학술(후보)지가 된 지 12년만에 한국연구재단(NRF)로부터 등재학술지로 선정됐다.
이를 기념해 방산학회 소속 12명의 주요인사가 한국방산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해 발전방향을 제시한다...<<편집자 주>>
무기를 구매하는 것은 백화점에서 상품을 사는 것과 다르다. 세상에 없던 것을 개발해서 구입해야 한다. 그래서 초기 개발한 무기체계가 완벽하기는 매우 어렵다.
현존 전투기 중 최고라고 자랑하는 미국의 F-35 전투기도 초기생산제품에서 엔진에 화재가 발생했고, 블랙호크로 잘 알려진 UH-60 헬기도 전력화 이후 5년이 지나서야 결빙 문제를 해결했다.
첨단 무기체계는 새로 개발된 후 시험평가를 거치고 야전부대에서 전력화한 다음 점진적으로 문제점을 보완해가는 절차를 통해서 전력화 시기를 맞추고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군(軍)은 많은 경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작전운용성능(ROC)을 지닌 무기체계를 요구하는 일괄개방방식을 통해 무기를 획득함으로써 그 기준에 조금만 미달해도 개발실패로 인정돼 채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연구개발이 지연되고, 전력화 시기를 놓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시작된 차기전술교량사업이다. 이 사업은 초기부터 교량길이 ROC가 세계에서 가장 긴 60m로 설정됐다. 2007년 현대로템이 사업자로 선정돼 세계 최고 길이(55m)에 근접한 53m개발에 성공하고도 6차례 시험평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2013년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초기 ROC가 전 세계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수준으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비호 개발에 무려 23년이 소요된 것이나, K2전차의 파워팩 국산화 실패, K11 복합소총 개발 실패도 진화적 ROC가 적용됐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제 우리 군도 획득체계를 혁신해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과감히 바꿔야 한다.
국방부가 국방 획득체계 개선을 개혁과제로 포함시켜 2016년부터 꾸준히 진화적 ROC를 적용한 무기 획득방안을 제시한 결과 국회에서도 진화적 ROC 적용을 수용해 최근 '방위사업법 시행령·시행규칙', '방위사업관리규정' 등을 개정하는 큰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국방중기계획에 이미 반영된 사업에 대해서는 여전히 선제적 개선노력과 고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자국의 전술, 전략적 여건과 기술 수준을 고려한 ROC를 설정해 우선 개발에 착수하되 잠재적 위협의 증대와 기술의 발전 추세를 감안해 목표성능을 높여가는 진화적 개발을 활성화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진화적 ROC를 적용한 개선방안, 즉 업체제안서 작성지침까지 포함한 시스템 전체를 혁신하는 특단의 조치가 이뤄져야한다.
최근의 안보환경은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초국가적, 비군사적 위협 증대로 전쟁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가운데, 국방재원은 제한되고 무기체계는 첨단화·고가화되고 있다. 따라서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무기체계에 적용하기 위해선 무기체계의 진화적 연구개발을 활성화해야 한다.
기존의 일괄획득 개념에 따라 한번에 완벽한 무기체계를 획득하고자 하는 계획은 시행착오를 끊임없이 유발해 왔으며, 특히 기술의 진부화, 전력화 시기 지연, 예산의 낭비, 사업포기에 따른 방산 생태계 파괴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해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최근 '방위사업법 시행령' 등 관련 법을 적극적으로 개정하고 있어 무기체계의 진화적 획득을 위한 법적・제도적 근거들이 마련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방위산업촉진법'이 입법되고 관련 법규의 개정을 통해 제도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과감한 혁신을 끌고 갈 컨트롤타워(Control Tower)를 중심으로 획기적인 인식전환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진화적 획득은 소요 물량 전체를 한 번에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 전력화가 가능한 단위로 나눠 단계적으로 획득하는 전략이며, ROC를 진화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다.
최신기술이 적용된 무기체계를 군에서 적기에 전력화하여 운용할 수 있도록 사업 초기단계에서는 군의 최종 목표성능에 다소 미흡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성능을 제공하는 무기 체계를 전력화 함으로써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고 이후 군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최종 목표성능을 충족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무기체계의 기능과 성능, 형상을 개량해 나간다.
이를 통해 새로운 무기체계의 조기 전력화와 기술 축적, 국산화, 기술 진부화 극복, 예산 절감, 튼튼한 방산 생태계 구축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무기체계는 한번에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는 현실을 공감하고 다른 선진국처럼 무기 개발 초기에 최소 ROC의 무기를 소량 생산해 전력화한 후 야전 운용을 통해 지속적인 성능개량을 통해 목표성능에 도달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기술진부화・전력화지연・예산낭비 등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고 나아가 수출 가능한 파생형 개발도 가능하다.
김영후(예비역 육군 중장) 한국방위산업학회 수석부회장은 육사31기로 제7기동군단장, 미군기지이전 사업단장, 8사단장, 육본 군참부장을 지냈다. 전역 후에는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 병무청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