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재검토㊤] 윤석열 대통령, 신임 금융위원장·금융감독원장 임명 '규제 완화' 나선 이유는
- 신임 김주현 금융위원장·이복현 금감원장, '금산분리' 규제 완화 '한 목소리' - '디지털 전환' 시대에 낡은 규제는 한계...빅테크 기업과 '역차별' 논란도
'금산분리'란 금융 자본이 산업 자본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을 말한다. 은행 중심의 금융 자본, 제조업 중심의 산업 자본이 각각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과 은행이 결합 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의미에서는 '은산분리'라 불린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기업이 은행의 주식을 일정 한도 이상 보유하거나, 은행 등 금융회사가 기업의 주식을 일정 한도 이상 보유하는 것이 금지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금융당국 수장들이 '금산분리' 재검토를 언급해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에 <녹색경제신문>은 '금산분리'의 현재 상황 및 향후 전망 등에 대해 상-하 2회에 걸쳐 조망한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을 임명한 직후 '금산분리' 재검토 논의에 힘이 실리면서 재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치권 관계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윤석열 정부에서도 규제 완화 등 선물이 예상된다"며 "금산분리는 재계 대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에도 규제 완화를 요구한 바 있고 삼성그룹 등 지배구조 문제에 있어 중요한 사안"이라고 전했다.
8일 재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7일) 임명된 김주현 금융위원장 내정자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와 맞물리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임명 발표 후 가진 간담회에서 "한국경제의 돌파구는 민간부분의 투자와 혁신 성장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며 "금산분리 원칙까지 건드릴 수 있다"고 언급해 금융규제 혁신을 예고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취임사에서 "시장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가 없는지 점검하고 규제를 걷어내겠다"며 규제 타파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윤석열 사단'의 핵심 인물로 전 서울북부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전문성 논란도 나온다. 1999년 금감원 설립 이래 검사 출신 조직 수장은 처음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대선개입 사건과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경제범죄형사부장을 맡기도 했다.
일단 두 금융당국 수장의 일성으로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김주현 내정자는 "외국 금융사들은 할 수 있는데 우리 금융사들은 못하는 것, 빅테크는 하는데 기존 금융사는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을 따져 타당하지 않은 규제는 다 풀겠다"며 "필요하다면 금산분리, 전업주의(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이 각각 고유의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방식) 등 기본적인 원칙까지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거까지 건드리겠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원칙은 지난 1982년, '대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사금고화를 방지한다'는 목적에서 처음 도입됐다. 그 당시 정부가 신규은행 설립과 제2금융권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자 대기업들은 앞다퉈 제2금융권에 진출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재벌 총수가 금융회사를 개인금고처럼 사용하면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됐던 것이다.
그리고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재벌개혁 등을 이유로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4%로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에는 은행 지분 보유 한도가 9%로 완화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동양그룹 자금난 사태로 금산분리 강화정책으로 선회하면서 다시 4%로 강화됐다.
'금산분리' 원칙은 현재 비금융주력자는 은행주식의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다만,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조건으로 금융당국의 승인을 얻은 경우엔 10%까지 보유가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금산분리 전면 재검토'에 방점을 찍었다. 금융정책 책사였던 윤창현 의원은 금산분리의 주된 이유인 ‘금융의 재벌 사금고화’에 대해 "대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훨씬 싼 이자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다"며 "금산분리는 법안의 문제보다 철학의 문제다. 금융과 실물의 관계, 금융과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극히 고정돼 있고 편협하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40년 전에 만들어진 금산분리 규제를 지금의 금융환경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과거와 달리 촘촘해진 각종 규제망을 뚫고 대기업이 금융을 소유해 사금고화 할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것.
또한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환경 속에서 금산분리로 인해 금융과 산업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낮아져 은행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이 핵심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기존의 낡은 규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현재 시중은행과 보험사 등 전통 금융사들은 '빅테크' 흐름에 따라 메타버스, 쇼핑, 의료 등 비금융 신사업에 진출로 경쟁력 제고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은행은 비금융회사의 의결권 있는 지분 15%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는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신사업 성장과 발전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들은 특례 적용으로 금융업 진출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역차별' 논란도 만만치 않다. 빅테크와 기존 금융사들 사이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 금융권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자제한, 지분 한도 조정, 자회사 소유 규제 완화 등에 기대감을 갖는 이유다.
예를 들어, 카카오뱅크는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2017년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자회사로 출발했다. 이후 2018년 정부가 금융혁신 차원에서 일반기업의 지분 소유 제한을 10%에서 34%까지 늘리는 '인터넷전문은행법'을 통과시키자 카카오뱅크는 급성장했다. 카카오는 현재 카카오뱅크 지분 27%를 보유하고 있다.
김주현 내정자는 "그동안 규제혁신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은 이유가 있는데 우리 사회가 어떤 위협을 택할 것인지 합의가 필요하다"며 "금산분리는 이유가 있으니 한 것이지만 너무 완고하게 지키면 또 문제가 있고, 완화하면 또 다른 리스크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빅블러와 신산업 창출을 얘기하는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 시점으로, 현 상황에 맞는 금융규제는 무엇인지, 이미 환경이 너무나 빠르게 바뀌고 있어 대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오너 리스크' 해법 차원에서 과거 회귀가 아닌 선진화 개선으로 시대에 맞게 균형 찾아야"
반면 금산분리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할 경우 재벌 대기업의 독식으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제조업의 부실이 금융사로 이어져 경제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선진화된 개선과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글로벌 시장은 현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세이며 그 중에서도 지배구조가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오너 리스크'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과거 회귀가 아닌 선진화 개선으로 시대에 맞게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주현 내정자도 "금산분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데 동의하지만 지금 산업 구조 변화를 보면 과거에 해왔던 금산분리가 맞는 것인지, 이를 개선할 필요가 없는 지 검토할 시점이란 뜻"이라며 "금산분리는 어느 쪽이든 결합함으로써 공정경쟁을 해치고, 집중되면서 피해가 있을 수 있어 논의 결과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조정할 지 결정될 것이라 본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금산분리로 인해 국내에서는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사를 소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은행 등 금융사도 정보기술(IT) 회사 등 다른 업종의 회사를 소유할 수 없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에서도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맞춰 '금산분리' 규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문화의 확산 등으로 급변하는 금융 산업 환경에 대한 제도적 지원책도 검토해야 한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주회사 규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에서 대기업집단이 민주주의를 없앨 수 있다는 공포감에서 유래한 것”이라며 “오늘날 주요국들 가운데 경쟁법으로 지주회사를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