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승환 해수부장관, HMM에 장관직 걸겠다는 속내는 CB 전환?
- 조 장관 “HMM이 관계부처 협의 없이 매각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장관직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 - 올해만 10조원 넘게 버는 HMM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수부 올해 총 예산 6조4171억원
조승환 해양수산부장관의 부적절한 발언이 이어지며 HMM(대표이사 김경배)의 민간 매각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5월 임명된 해수부장관이 반년도 되지 않아 장관직을 걸겠다며 '대우조선해양처럼 급하게 매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렇게 되면 어떤 기업도 인수의사를 내놓기 어렵다. 주무부처의 장관이 사실상 매각을 반대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는 '대우조선해양'처럼 20년쯤 꿰차고 앉아 매각이 급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도이거나, 내년 10월 이후 남아있는 2조6800억원 규모의 영구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전환하겠다는 속셈이 아니냐는 의혹을 자초하는 일이다. 해수부 산하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사장 김양수)는 이중 절반인 1조34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두가지 모두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대형기업의 민간매각은 정권초기에 이뤄져야 특혜시비 등에서 자유롭고, 요즘처럼 주가가 하락한 시기가 좋은 기회라는 것은 금융권에 있는 인사라면 상식에 해당하는 얘기다.
또한 CB 등을 전환해 지분을 더 늘리는 것도 이미 정부 지분이 절반에 달해 실익이 없고, 정부 지분이 늘수록 매각은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조승환 장관의 발언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해양수산부는 기업을 민간에 매각해본 경험도 없고, 매각 계획도 없고, 전문인력도 없다. 기업매각은 말로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구조조정이 본업인 산업은행도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20년이 넘게 걸렸다. 이 과정에서 수조원의 국민혈세가 날아갔다.
HMM은 원래 민간기업이고, 사실상의 대주주인 기획재정부가 판단할 사안이다. HMM의 최대주주인 한국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최대지분을 보유한 기관은 기획재정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승환 장관은 앞서 윤석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민영화'의 당위성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지난 8월10일 대통령업무보고 사전브리핑에서 조 장관은 "2020년 흑자전환에 성공한 HMM은 중장기적으로 민간에 경영권을 이양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말했고, 다음날 대통령업무보고에서는 "HMM의 경쟁력을 높이고 민영화를 위한 정부 지분 매각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며 민간 매각을 공식화했다.
중요한 것은 HMM의 민간 매각을 공식화했고, 대통령과 약속했다는 점이다. 이는 윤석열정부의 정책기조와 맞물려있는 사안이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승환 장관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각 기업의 가치, 해당 산업이 놓인 환경 등에 따라 매각 시기와 형태는 다르게 논의돼야 한다"며 "HMM 매각과 대우조선의 매각은 별개의 사항"이라며 “HMM이 관계부처 협의 없이 매각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장관직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해 민간 매각을 사실상 거부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경솔한 발언으로 보인다. 장관은 한 부처의 대표이자 국무위원의 구성원으로 국무회의에 참여하는 자리다. 일개 기업에 불과한 HMM이 언제부터 장관직을 걸만큼 해수부의 핵심업무가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해수부는 강무현 전 해수부장관이 뇌물수수 등 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런 이유 등으로 이명박 정부시절 해체를 겪기도 했다. 이른 바 '해피아(해수부+마피아)' 사태를 겪은 바 있어 아무리 공직기강을 강조해도 부족한 부처다.
▲조승환 장관·김양수 해진공 사장은 해피아 의혹의 핵심 호양회 멤버
해운업계에 따르면 HMM 매각과 관련해 이전 정부와는 달리 민간 경제를 중시하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로 실제 최대지분을 가진 기획재정부와 공식적인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조속한 민간매각을 추진하려는 분위기다.
HMM 매각을 사실상 반대해 왔던 김양수 해진공 사장은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여서 목소리를 크게 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이 장관직을 내걸고 HMM 매각에 제동을 건 이유다.
김양수 사장은 조 장관의 대학 1년 선배로 같은 호양회(고려대·해양인 모임) 멤버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과 직접 관련된 김영춘 전 해수부장관, 박준영 전 해수부차관, 엄기두 전 해수부차관 등이 모두 호양회 멤버다. 또한 유창근 전 HMM 사장, 배재훈 전 HMM 사장을 비롯해 최윤성 전략재무총괄전무 등 HMM 핵심임원 다수가 호양회 멤버다.
한편, 조 장관은 지난 7월부터 수협경제원장으로 출근하고 있는 엄기두 전 차관을 위해 직접 수협 회장을 만나기도 했다는 후문도 업계에는 파다하다. 수협경제원장은 이전에는 부장급에 불과했으나, 엄 전 차관의 보수는 3억원에 이르는 등 직급이 격상됐다.
조 장관이 직(職)을 건 이유가 호양회라는 사조직때문이라면 이는 심각한 사안이 될 수도 있다. 공직자의 첫번째 조건은 공사의 구분이기 때문이다.
조 장관은 장관직에 임명되면서 SNS 계정을 통해 자신의 여러가지 업무상황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HMM이 언급된 것은 신항 개발과 관련해 단 1차례 뿐이었다. 그만큼 HMM 민간매각 지연에 장관직을 걸겠다는 그의 말은 설득력이 빈약하게 느껴진다.
▲올해만 10조원 넘게 버는 HMM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수부 올해 총 예산 6조4171억원
조 장관은 HMM이 아직 경영정상화에 이르지 못했고,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HMM의 경영실적을 보면 내년 이후 매각은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HMM은 지난 2020년 9818억원, 지난해 7조3775억원의 영업이익으로 2년 연속 사상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는 10조6652억원(에프앤가이드 기준)으로 또다시 사상최대의 영업이익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내년에는 해상운임 하락으로 인해 6조100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1976년 설립된 HMM은 지난해 이전 25년 동안 단 한차례도 조 단위의 영업이익을 올린 적이 없었다.
내년까지 포함하면 HMM의 누적 영업이익은 무려 26조원에 이른다. HMM은 법인세가 감면되는 기간산업 업종으로 영업이익 대부분이 순이익이다. 인건비를 포함한 연간 고정비용은 경기 호황기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4000억원대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수십년 먹고 살아도 될만큼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산업은행(3000억원)과 해양진흥공사(6000억원)가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해 9000억원규모의 부채가 자본금으로 바뀌었다. 남아있는 산은과 해진공의 CB·BW는 2조6800억원으로 줄었다.
또한, 올해 상반기에만 영업외이익으로 1조2000억원 규모의 환차익이 발생했다. 하반기에는 환율 상승 지속과 달러보유액 증가로 훨씬 큰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해수부의 올해 총 예산은 6조4171억원이다. 해수부가 HMM을 지원할 이유도, 여유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HMM이 해수부를 지원해야 할 판이다.
상위 11개 해운기업이 전 세계 해운업 수익의 85%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영국의 클락슨 등 글로벌해운컨설팅 업체들의 분석이다. (HMM은 선복량 기준 8위)
이들은 전례없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을 항공업체를 비롯한 물류기업 인수에 투자하면서 종합물류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는 경기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해운업의 특성상 위험을 분산하고 다양한 이익원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주요 화주들의 물류 수요는 항구에서 항구가 아니라, 생산지에서 소비자이기 때문에 해운만으로 종합물류업체와 경쟁하면 장기적으로 화주를 빼앗길 위험도 있다. 누적 영업이익과 환차익을 합해 30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제때 투자하지 못하면 미래 경쟁력에서 뒤쳐질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또한, 매각을 서두르지 않으면 내년 이후에는 인수비용 규모가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 그만큼 매각이 어려워질 수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강석훈 산은 회장은 최근 코스피가 큰 폭으로 하락한 기회를 이용해, 국가기간산업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조속한 HMM 민간매각 결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