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사주 전량 소각은 옥중경영 강화 위한 고육책?
-현상유지 후 출소 이후를 도모...지주사에 이 부회장 外 다른 변수의 여지 없애
삼성전자가 지난 27일 1분기 실적과 함께 발표한 자사주 전량 소각 및 지주사 전환 백지화의 배경을 두고 재계의 해석이 제각각이다.
그간 재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게 정설이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면,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하며 지주회사의 사업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그만큼 높아진다. 이는 흔히 인적분할의 마법이라고 불린다.
이런 의미에서 자사주 전량 소각은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자사주는 2121만1379주(13.5%)는 시가로 약 40조원 이상이다. 삼성전자의 발표대로 이를 전량 소각하게 되면 총 주식수가 줄어들어 그만큼 주주들의 가치가 높아진다. 자사주 소각이 주주가치 제고 방안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오늘(28일)도 어제보다 3% 이상 오른 상태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백지화하며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고,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정부의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 수감중인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읍소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을 내놨다.
경영권 승계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은 관련이 없으며, 이를 위해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의 강요와 압박에 의해 자금을 출연한 것이라는 기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측은 이런 결정의 배경으로 "지주회사 전환이 기업 경쟁력 강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경영역량의 분산 등 오히려 사업에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야권을 중심으로 추진중인 재벌개혁안에 삼성전자를 타겟으로 하는 상법개정안 등이 부담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지주회사 전환시 삼성전자와 계열사간 보유지분 정리 문제, 금산법, 보험업법상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이 보유한 전자지분 매각 문제, 상법개정안에 포함된 감사 분리선출제와 의결권 제한 등의 불안요소를 떠안으면서까지 무리한 전환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자사주 소각은 이 부회장의 옥중경영 강화 조치?...현상 유지하고 후일 도모
사실 자사주 소각은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기도 하지만, 기존 대주주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소각되는 비중만큼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돼 있는 상태인만큼 무리하게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기 보다는, 옥중경영을 더욱 강화하고 기존 구조를 유지해 출소 이후를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재벌 개혁과 개혁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배력 강화를 위한 지주사 전환은 이 부회장이 구속되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장담하기 어렵다.
계열사 지분 정리 과정에서 각사의 이사회와 주주들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설득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수감중인 상태에서는 반발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수감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승계절차를 일단 보류시킨 후 당장의 지배력을 조금이라도 강화해 옥중 경영에 힘을 싣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만약 지주사 전환이 추진되고, 현재 논의중인 입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 부회장의 경영권이 오히려 약해질 수도 있다. 외국인 지분율이 50% 이상인 삼성전자에 외국계 헤지펀드가 추천하는 이사가 포함될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다.
또 이 부회장 외에 다른 영향력 있는 인물이 급부상할 우려도 존재한다. 이 부회장이 수감되던 날 호텔 신라의 주가가 크게 상승한 것도 이런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여러가지 상황을 감안하면, 일단 현 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분석이다. 삼성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지주사 설립에 다른 변수가 끼어들 여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 체제로 삼성그룹이 일사분란하게 재편되는 것도 당장은 어려워 졌지만, 이부회장 외 다른 인물이나 세력이 삼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차단하는 셈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분은 0.6%에 불과하다. 투병중인 이건희 회장의 3.54%와 계열사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18%를 약간 상회한다. 여기에 총수일가 등 특수관계인, 우호지분 등을 모두 포함하면 31%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국민연금도 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간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이 정도의 지분만 가지고도 그룹 지배권을 충분히 행사해 왔으며, 이 회장의 투병 이후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실질적 오너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외국인 주주의 지분율이 현재 50%대에서 크게 상승한다는 점인데, 외국인은 지금까지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는 않았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처음으로 실시한 분기배당이 외국인 주주를 달래는 효과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게다가 앞서 지적한대로 현재 진행중인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 이 부회장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