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최태원·정의선·구광모 4대 그룹 회장, 25년 만에 전경련 행사 참석...'반도체 빅딜' 이후 처음
- 17일 전경련-경단련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개최 ...5대 그룹 회장 등 주요 총수 참석, 양국 경제협력 논의 - 4대 그룹 총수가 전경련 불참한 것은 1998년 '빅딜' 이후 ...당시 구본무 LG 회장, 빅딜에서 반도체 빼앗기고 항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4대 그룹 회장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주도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에 25년 만에 참석했다.
주요 그룹 회장이 전경련 행사에 참석한 것은 1998년 10월 도쿄에서 열렸던 제15회 한일재계회의가 마지막이었다.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전경련 회장)을 필두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 손길승 SK그룹 회장 등이 참석한 바 있다.
17일 일본 도쿄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에 참석한 양국 주요 경제계 인사들은 양국 관계 정상화를 반기며 상호 투자 등 경제 협력 확대를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참석했다. 한국 대통령의 한일 경제인 행사 참여는 2009년 6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방일 기간 개최한 ‘한일 경제인 간담회’ 이후 14년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이후 14년 만에 참석 "글로벌 아젠다에 공동 협력 대응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전 세계가 직면한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간의 연대와 협력이 중요하다"며 "한일 양국이 공급망, 기후변화, 첨단 과학기술, 경제안보 등 다양한 글로벌 아젠다에 대해 공동으로 협력하고 대응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전환,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미래 첨단·신산업 분야에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재용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가 전경련 행사에 모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밖에도 한국 측에서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을 비롯 한일경제협회장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 총 12명이 참석했다.
일본 측에서는 사토 야스히로 미즈호 파이낸셜그룹 특별고문, 야스나가 다쓰오 미쓰이물산 회장, 하가시하라 도시아키 히타치제작소 회장, 고가 노부유키 노무라홀딩스 명예고문 등 11명이 자리했다.
전경련,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경단련 벤치마킹해 설립...4대 그룹, 국정농단 사건 후 모두 탈퇴
4대 그룹은 그간 전경련과 경단련이 매년 개최하는 한일 재계회의엔 불참하거나 총수가 아닌 사장급이 참석해왔다.
지난해 7월 서울서 열린 한일 재계회의 때도 4대 그룹에선 사장급들이 참석했다. 이재용 회장은 당시 이 회의 참석차 방한한 도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스미토모 회장), 히가시와라 도시아키 경단련 부회장(히타치 회장)과 각각 만찬·오찬을 함께했지만 전경련 행사에는 불참했다.
전경련은 1961년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경단련을 벤치마킹해 설립한 경제단체로 지금까지 경단련을 포함한 일본 재계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4대 그룹 총수가 전경련 행사에 불참하게 된 것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빅딜'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외환위기 주범으로 재벌을 지목하고 대규모 구조조정(빅딜)에 나섰다. 정부가 직접 민간기업에 '빅딜'을 하라고 강제하는 것이 곤란하자 전경련은 자율조정을 자처했다.
LG그룹은 반도체 사업이 빅딜 대상에 포함되자 '빅딜' 자체를 반대했다. 하지만, LG그룹은 정부와 전경련의 압박에 끝내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겨주어야 했다. 이후 구본무 회장은 전경련 행사에 불참했다.
또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해 제공했다는 혐의로 전경련이 지목된 후 수사가 진행되면서 주요 그룹 총수들은 전경련 행사를 피했다.
최근의 경우 4대 그룹은 2016년 12월 국정농단 관련 청문회 이후 전경련을 아예 공식 탈퇴했다. 삼성의 경우 이재용 회장이 "전경련 활동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후 2017년 2월 전경련을 탈퇴했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는 아버지 세대의 갈등과 달리 서로 '호형호제'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정부와 창구 역할을 맡아 왔다. 전경련은 최근 김병준 대행 체제에서 현 정부와 다시 가까워진 분위기다.
이재용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敵)은 적을수록 좋다"...한일 경제협력에 긍정적 반응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날 BRT에서 '미국 반도체 보조금 문제에 대해 한일이 함께 협력해 대응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敵)은 적을수록 좋다"고 답변했다.
이재용 회장의 답변은 '일본과 우의가 쌓이면 공동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재용 회장은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해 일본 내 정·재계 고위층 인맥이 넓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며 "양국 간 파트너십이 다방면으로 공고해지도록 책임 있는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은 "이번 한일 (정상) 합의는 양국 경제계에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 이상으로 반가운 소식"이라며 "양국 경제계는 투자 확대, 자원 무기화에 공동 대응, 글로벌 공급망 협력, 인적 교류 정상화, 제3국 공동 진출, 신산업 협력 등을 확대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한일경제협회장)은 양국 재계가 마련한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언급하며 "(한국 청년들의) 일본 취업에까지 활용된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도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은 "양국 정부가 관계 건전화를 위해 노력하는 천재일우의 기회"라며 "산업에서 그린 트랜스포메이션(녹색 전환), 디지털 전환, 저출산 고령화 대응 등 함께 대처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