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경영자' 잇단 '세상 속으로'...류진·정유경 등 공개 행보 '관심'받는 이유
- 류진 풍산그룹 회장, 최근 전경련 회장 맡아 활발한 행보 - 정유경, '신세계×프리즈 VIP 파티'에 7년 만에 공개 석상 - 고동진 경계현 등 삼성전자 전혁직 CEO 대중과 소통 활발 - 김택진 김범수 등 IT 창업자 4명, 대한상의 부회장 맡아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한국경제인협회'로 새 출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에 나서면서 '은둔의 경영자' 이미지를 벗은 데 이어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 7년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 최근에는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고동진 고문 등 최고경영자(CEO) 출신들이 잇단 출간을 비롯 대중과의 소통에 나서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전자 전현직 CEO들이 대중 앞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여성 리더'로서 꾸준히 대외활동을 해온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올해 '한국방문의 해' 위원장을 맡는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김동한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요즘은 '소통의 시대'인 만큼 경영자로서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이부진 사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의 경우 각각 오빠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운데 20여년간 경영수업을 착실히 해왔고 이제는 50대 나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역할에도 책임감있게 나서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정유경 총괄사장은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패션 편집숍인 '분더샵청담'에서 개최한 '신세계×프리즈 VIP 파티'에 참석했다.
국내 미술계 최대 행사인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2023' 일환으로 개최한 신세계 VIP 고객 500명 초청 행사에 참석한 것.
이는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던 정유경 총괄사장이 7년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정유경 총괄사장이 7년 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6년 12월 권영진 대구시장, 장재영 신세계 대표이사 사장 등과 함께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개점식에 참석한 때 였다.
정유경 총괄사장이 1996년 입사 이래 20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정유경 총괄사장의 '은둔 경영'은 어머니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닮아 '리틀 이명희'로 불리기도 한다.
김동한 교수는 "1972년생이 정유경 총괄사장은 이제 기성세대로서 역할론이 생기는 시기"라며 "사회적 활동을 하는 시기와 함께 '은둔' 보다는 '소통'으로 새로운 역량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이날 여동생 행사에 참석한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할리우드 배우 조디 포스터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이는 대외 활동이 활발한 정용진 부회장과 상대적으로 조용한 정유경 총괄사장이 대비되는 장면이다.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과 '라이벌'로 평가받지만 대외 소통에서는 앞선 평가를 받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지난 3월 '한국관광의 해'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K관광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부진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한국방문의해위원회 명예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이부진 위원장은 "문화예술·K팝·게임·공연·스포츠 등 K컬처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묶어 전 세계에 판매하고, 항공·쇼핑·음식·숙박 등 관광업계의 역량을 결집해 K관광이 우리 경제의 '퍼스트 무버'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이부진 사장은 지난 2월부터 두을장학재단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2019년 이인희 고문이 작고한 지 4년 만에 물려받은 것이다. 삼성가 여성 리더로서 자리를 확고히 한 셈이다.
두을장학재단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아내인 고 박두을 여사의 유지를 기르기 위해 2000년 2월 박두을 여사의 유산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은 각각 지난해 급여 및 상여금을 합쳐 약 35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대중들 사이에선 두 사람이 연봉도 비슷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이부진 사장은 오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작년 10월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가까운 시시에 부회장으로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류진 전경련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어 경제단체 수장에 올랐다는 평가다.
그간 방산(방위산업) 기업인 풍산을 키우는 과정에서 한국은 물론 미국에도 폭넓은 인맥을 확보하고 여러 단체 등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지만 국내 언론에 자주 언급이 안돼 '은둔의 경영자'라는 꼬리표가 달리기도 했다.
중견그룹의 CEO가 주요 경제단체의 수장을 맡는 것도 4대 그룹 중심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바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 삼성 전현직 CEO들이 대중들과 소통도 관심을 끈다. 삼성 안팎에선 "과거 은둔의 아이콘으로까지 여겨졌던 삼성전자 CEO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갤럭시 성공 신화'의 주역이자 대표이사 CEO를 지낸 고동진 삼성전자 고문은 지난 7월 신간 서적 '일이란 무엇인가'를 출간했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전 KT 회장)은 지난 6월 '황의 법칙'을 출간했다. 앞서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도 '초격차' 시리즈를 출간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은 작년 7월부터 유튜브에서 '위톡(We Talk)'이란 이름으로 리더십, 경영 철학, 조직 문화 관련 내용을 방송하고 있다.
아울러,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021년 2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으면서 IT 창업자들이 잇달이 부회장단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는 대한상의 사상 처음이다.
새 부회장 7명 중 4명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였다.
이는 'X세대' IT 창업자들이 재계 주류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평가다. '은둔의 경영자'가 아닌 재계 '인싸'로 등극했다는 비유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