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사회악' 취급받는 게임 문화… 인식 개선 시급
KBS 시사프로그램에서 살해범 범행 원인으로 게임 중독 언급... 과도한 억측에 여론 반발 문체부 산업 발전 위해 인식 개선하겠다고 공표... 넷마블 게임콘서트 통해 문화적 가치 전파
또 다시 게임 중독 및 과몰입을 범죄와 연관시키는 발언이 제기됐다. 둘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힌 연구 결과가 없음에도 이와 같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에 게임 산업 및 문화의 온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비합리적인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KBS에서 방영된 ‘스모킹건’에서는 만삭 아내를 살해한 남편의 사례가 다뤄졌다. 해당 방송에 출연한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남편이 대학생 시절 하루에 8시간에서 10시간씩 게임을 해 의과 대학 예과 시절 1년 유급을 당했다”며 “해당 인물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겨해 인생을 게임처럼 전략적으로 끌고 가려는 성향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에 “전문의 시험에 불합격해 스트레스를 받은 범인이 게임 세계에서만 할 수 있는 ‘리셋’을 현실에서도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며 범행 동기를 설명했다.
이러한 내용을 접한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원인 규명이 과도한 억측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철우 게임이용자협회장은 “당시 사건을 다룬 대법원에서는 ‘남편이 게임을 장시간 즐겨했다는 등의 사정은 부부싸움의 동기가 될 수는 있겠으나 살인의 동기로는 매우 미약하다’라고 판결했다”며 “이후 파기환송심에서도 ‘불안감 및 스트레스 등 복합적인 사정이 작용된 부부 싸움에서의 격분’이 직접적인 살인의 원인’이라고 설시했다”고 전했다. 이에 “우발적인 범행의 과정을 게임 과몰입 또는 현실과 게임의 혼동 증상으로 설명한 것은 방송심의의 공정성과 객관성 기준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라며 KBS 시청자청원 게시판에 규탄문을 올렸다.
멀지 않은 과거에도 범죄의 동기를 게임 중독으로 설명한 사례가 있었다.
작년 8월 검찰은 신림역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를 송치하고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게임 접속 내용을 살폈다. 이후 심리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피의자가 오랜 시간 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자기 불행감이 증가했으며 자극적인 게임에 몰두하는 자기고립 상태에 빠져있었다”면서 “지난해 12월부터 게임만 해오다가 범행 직전에서야 외출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범행에) 게임 중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밝혔다.
이와 함께 범행 당시 피의자의 행동이 FPS 게임 내 캐릭터의 움직임과 비슷하다면서 “마치 1인칭 슈팅 게임을 하듯 잔혹하게 범죄를 실행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아직까지도 게임 중독과 범죄를 연결시키는 언급들이 간헐적으로 나오고 있으나, 아직 두 변인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규명한 연구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탠포트 대학 내 브레인스톰 연구소는 비디오 게임과 폭력적인 행동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모든 연구와 해당 분야의 문헌 등을 포함한 82개의 의학 연구 논문을 검토한 결과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에스펜 올세트(Espen Aarseth) 덴마크 코펜하겐IT대학교 게임학과 교수도 ‘제 2회 게임문화포럼’에 참석해 “미국 총기 난사 사건의 사례를 놓고 봐도 게임 중독과 범행 사이의 연결성을 찾기 힘들었다”라며 “오히려 가해자들은 문학적인 자기 표현을 선호한다는 공통점을 공유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문학을 범죄와 연결짓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을 통해 이와 같은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 게임을 질병 및 범죄의 원인으로 정의하는 부정적 사회 인식에 적극 대응하고,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 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모든 세대가 참여하고 소통할 수 게임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게임 가족 캠프를 개최해 가족 간 소통과 이해의 장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넷마블 역시 문화재단을 통해 게임의 긍정적 측면을 사회에 전파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가오는 29일 개최되는 제21회 넷마블게임콘서트는 ‘나, 우리, 세계, 사회’와 게임 간의 연결성을 알아보고 게임의 역할과 가치를 탐구해보는 ‘게임과 연결’을 주제로 진행된다. 민정상 이모티브 대표와 게임 방송인 겸 유튜브 크리에이터 김용순님이 각각 ‘게임과 건강의 연결고리, 디지털 치료제’, ‘게임과 시청자의 연결고리, 게임 방송인’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