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 낀 한국 HBM메모리… “전략적 선택 압박 거세질 듯”
美 산업안보차관, “HBM, 미국과의 동맹 위해 개발해야” 강제성, ‘아직’은 없지만… 정부 적극 나서서 막아야
[녹색경제신문 = 이선행 기자] 미국 정부 관계자가 한국 반도체 기업을 겨냥해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중국이 아닌, 미국과의 동맹을 위해 개발해야 한다”고 최근 발언한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전략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최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에서 “새로운 전장의 승패는 우리가 오늘 개발하는 기술이 좌우할 것”이라며 중국의 첨단기술 확보에 대한 견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HBM을 만드는 전 세계 3개의 기업 중 2개가 한국 기업이다. 그 역량을 우리의 동맹을 위해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HBM 3사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마이크론이 해당한다.
이승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HBM에 대한 언급은 곧 인공지능(AI) 반도체 그 자체를 의미하며,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다. 군사용 로봇 등 무기를 지능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기업에서는 난감한 입장이다. 정부가 나서 대응하는 쪽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실리를 취해야 한다. 협상 시 최신 버전의 HBM이 아닌, 구세대의 HBM을 수출하는 방안 등을 내놓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이하 김 전문연구원)은 역시 정부가 나서 실익을 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김 전문연구원은 “강제성은 없는, 권고사항 정도라고 볼 수 있다”라면서도 “정부가 직접 대응해야 할 문제다.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 부담감이 크고 내용 자체도 무겁다”고 말했다.
이어 “기대하는 만큼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고 안 나서고의 차이는 크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해당 발언을 바탕으로 협상을 이끌어 갈 때는 미국이 원하는 부분에 있어서 큰 충돌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적당하게 들어주면서도 우리의 실리는 찾아야 한다. 미국의 요청에 무조건 예스맨만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국가 간 사안으로 개별 기업으로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은 AI 반도체의 근간이 되는 HBM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계속되며 자립을 위해 노력 중이다.
자립 여부와 그 시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업계 관계자 A씨는 “HBM은 D램을 쌓아 만드는 제품”이라며 “현재 중국에서 D램을 생산 중으로 2~3년 정도 후면 자립이 가능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B씨는 “중국은 현재 D램과 낸드 플래시에서도 자립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HBM의 자립은 기우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최근 노무라증권은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D램 생산 능력이 현재 월 16만 장(웨이퍼 단위)에서 올해 말 20만 장으로 늘어나고, 내년에는 30만 장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노무라증권은 “글로벌3사 대비 성능과 수익성에서 뒤처지지만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다”고 분석했다.